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출산하고 조리원 동기마저 없어 반쯤은 외로워 미쳐가던 찰나, 당근마켓에 육아 동지를 구한다는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댓글이 꽤 달렸습니다. 다들 연고도, 잘 아는 이웃도 없이 독박육아를 이어가는 동네 엄마들이었습니다. 카톡방이 만들어졌는데 엄마들은 (모두가) 육아스트레스로 가출 시도도 해보았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하도 어금니를 앙다물어서 턱관절이 아프다고들 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둘째를 낳는 건 미친 짓이라고도 했습니다.
저출산 문제 해법이 '출산 기피 부담금'? 돈보다 중요한 건
아기를 낳고 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너무 예쁘지만, '왜 아기를 낳지 않는지 알겠다'며 되뇐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예산을 그렇게 쏟아부었다는데 피부에 와닿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이웃도, 지근거리 친척도 없는 부부 둘이서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육아가 버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지원금 얼마보다 절실한 건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건 그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어서라는 걸 몸소 느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창양 산업부 장관 후보자의 '출산 기피 부담금' 칼럼을 읽고서는 쓴웃음이 났습니다. 이 후보자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경제력이 있으면서도 출산을 기피하는 데 대해 부담금을 도입하는 것이 의미 있는 정책대안이 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저출산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이미 그 수준이 심각하여 일반적이고 임기응변식의 방편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중략)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무뎌진 책임의식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이 책임의식이 부족해서 아이를 낳지 않나?' 반문이 들었지만, 10여 년 전에 쓴 칼럼이니 그때보다 출산율이 더 낮아진 지금의 상황을 후보자가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좀 더 그럴듯하게 해명할 줄 알았습니다.
▲ 이창양 산업부 장관 후보자
'왜 낳아야 하는가'…무책임한 후보자 답변
그런데 오늘 출근길 후보자는 기자들 질문에 "경제학적으로 저출산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가 보여드린 거죠."라고 답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정도니까 문제될 게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솔직히 이 답변을 듣고 조금 슬펐습니다. 한 부처의 최고 책임자 후보이자, 새 정부의 굵직한 정책 결정을 담당할 사람의 저출산 문제 인식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도 났습니다. 청년들의 질문은 이미 달라졌습니다. '왜 낳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낳아야 하는가' 로 말이죠. 출산 문제를 징벌세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과연 '새로운 시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럼이 논란이 된 이후에도 후보자 생각이 그대로라면 청년들의 생각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는 반증이고, 그건 무책임한 겁니다.
해마다 기록을 쓰고 있는 '사상 초유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나갈 내각의 구성원이라면 본인이 칼럼에서 지적했던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있어야합니다. "보육과 교육 등 출산에 따른 부담을 크게 낮추고, 출산 기피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을 높여가는" 방안이 무엇인지 답해야합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 청년들이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한 세대가 되었는지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출산기피부담금이 그저 경제학적인 이론을 제시한 거라는 성의없는 답변은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