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였다. 검찰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대상에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하 김학의 사건)이 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임에도 무혐의 처분한 검찰', '여성을 성적 도구화 해 착취한 고위 공직자'. 우리 사회의 적폐가 이번에야 말로 청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민들은 기대했다. 늦었지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랐다.
대중의 시각과 충돌하는 불편한 진실
<참고>
[취재파일] 김학의 前 차관 성접대 의혹과 동영상, 그리고 정확한 분노
[취재파일] 김학의 · 장자연-대중이 원하는 것과 대중을 위하는 것
그러나 취재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론에 순응하기는 쉽지만, 여론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혐의 직결 여부와 별개로 영상 내용만으로도 부적절한 것이 명백한 김학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대다수 언론은 편한 길을 택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임에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을 부각했고, 동영상 고화질본을 확보했다며 뉴스에 방영한 언론도 있었다.
피해 여성 진술에 대한 의문, 그리고 여론
'성인지 감수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과 다르다'는 판단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적 시각은 아닐지 조심스러웠다. 부부 간 성폭력이 인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는 사건을 성매매 혹은 성접대 사건으로 규정하더라도 특정 시점에서 발생한 특정 사안은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억압되고 종속된 상태에서 성적 노예화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현장 취재기자들은 서로 생각을 공유하면 토의하기도 했고,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판결문을 수차례 다시 읽으며 자신의 시각을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학의 사건은 다른 성폭력 사건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간간이 피해 여성 진술의 한계 내지 문제점을 짚는 기사들이 나왔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 권력자를 단죄해야 한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정의로운 구호 속에 합리적 의문 제기가 설 공간은 협소했다. 가해자에 대한 옹호로 쉽게 치부되기도 했다.
최종 보고서에 담긴 조사단의 고민, 하지만…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영상이 촉발한 사건, 즉 성폭력 사건이 주된 쟁점이었지만, 2019년 3월 2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의 뇌물 혐의, 그리고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권고했다. 사건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성폭력 부분에 대한 판단은 없었다. 조사 실무를 담당한 대검 진상조사단은 윤중천과 한 때 윤중천의 내연녀로 알려졌던 여성에 대한 '무고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권고 의견을 냈지만,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과거사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제기된 의문과 추정
직권남용 혐의 수사 권고 대상자의 범위는 이런 정치성 의심을 증폭시켰다. 법조계에서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검증을 담당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수사 권고 당시 민주당 의원)이 빠진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인사 검증을 담당하면서 문제의 동영상의 존재 여부 및 내용에 가장을 큰 관심을 가졌을 사람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듬해 있을 총선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야당 의원만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한 것 아니겠냐고 추정했고, 김학의 전 차관 임명 당시 법무부 장관이면서 수사 권고 당시 야당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보도자료에 담긴 '정치적, 정책적 고려 없이'
이런 의혹은 검찰 과거사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었다. 2019년 3월 25일, 검찰 과거사위의 보도 자료엔 이례적인 문구가 포함됐다. '(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사건 진상규명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어 어떠한 정치적, 정책적 고려 없이 사건의 진실만 쫓아 실체를 규명할 것임'. 묻지 않았는데 답을 한다는 건 질문이 나올 것임을 예상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사위 스스로 자신들의 수사 권고가 '정치적'이거나 공수처 설립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정책적 고려'로 해석될 수 있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부분은 후속 취재파일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정치성을 의심할 만한 한 단면만 살펴보도록 하자. SBS 확보한 대검 진상조사단 단원들의 단체 채팅방 내용에 따르면, 조사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 조사단원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사실 민정 관련해서는 부실 인사 검증 및 임명 강행이 핵심인데 조응천까지 수사 의뢰 시 민주당까지 뭐라 할까 봐 일단 곽상도만 넣었어요'
이 메시지를 남긴 조사 단원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야당에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다른 조사단원의 문제제기가 있자 '민주당 반발은 (그냥) 하는 소리다', '조응천의 범죄 사실이 안 써진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발표 이후엔 '무고가 빠져서 나중에 큰 부담될 듯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직권남용 혐의 수사 권고 대상자를 정할 때 정치적 고려를 했음을 자인하고, 무고 혐의가 수사 권고에서 빠진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희망 답안이 정해진 수사 권고…마냥 따르지는 않은 검찰
결국 사건을 수사할 검찰 수사단 단장에는 검찰 내 손꼽히는 특수통으로 불리던 여환섭 당시 청주지검장이 낙점됐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일단 수사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별건 수사로 김 전 차관을 구속기소하면서도, 희망 답안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아니, 문제의 전제를 부정하기도 했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에 대한 수사 권고의 가장 근 근거는 과거 청와대 근무자의 조사단 진술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단은 수사 결과 보도자료에 해당 근무자는 '(조사단이 면담보고서에 담은) 그런 취지의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적시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박관천 면담보고서'의 내용이 진술자의 진술과는 다른 취지로 적혀 있음을 공식화한 것으로,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가 잘못됐다고 비판한 셈이었다. 검찰 과거사위는 특정 검찰 관계자들이 건설업자 윤중천과 유착된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 수사단은 수사에 착수할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내용에 비춰보면 허무한 결론이었다. 이 결론을 위해 제한된 공적 자원이 김학의 사건에 투입된 사이, 누군가는 피해를 봤을 지도 모른다.
검찰에는 검사장 인사와 관련한 속설이 있다. 서울과 가까운 자리일수록 요직이라는 것이다. 이런 속설에 따를 때, 희망 답안을 순순히 따르지 않은 여환섭 검사장은 요직에서 점점 멀어졌다. 청주지검장에서 대구지검장으로, 다시 광주지검장으로,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은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출국금지 조회' 사건
그런데 간단해 보이는 이 사건의 수사 결과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김학의 수사단, 그리고 진상조사단의 고(故) 장자연 사건 재조사에 시선이 뺏겨 안양지청 사건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당시 안양지청은 공익 법무관의 출국금지 여부 조회뿐 아니라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적법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당시엔 수사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김학의 전 차관의 해외 도피를 막은 것은 정의의 실현 아니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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