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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파일] "대표단 파견이나 공식 문건 없어"…유네스코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단독][취재파일] "대표단 파견이나 공식 문건 없어"…유네스코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 종묘 앞 세운4구역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고층 건물 재개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 유네스코 측에서 "122m 건물을 지어도 된다"는 의견을 전했다는 서울시의 주장과 배치되는 유네스코의 공식 입장이 나왔습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2006~2008년쯤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라고 유네스코 업무를 하는 유산 담당자들이 오셔서 그때 벌써 122m까지 지어도 된다고 그랬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같은 날 열린 기자설명회에선 "유네스코에서 122m를 전문가가 언급한 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을 통해 SBS가 입수한 유네스코 측 공식 답변 자료에서 관련 사실 유무를 묻는 질의에 유네스코는 "해당 사항이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오 시장이 언급한 시기에 유네스코와 자문 기관인 ICOMOS 본부에서 승인한 공식 대표단 파견이나, 현장 검토 등 공식 활동을 한 적이 없고, 서울시에 해당 의견을 전달한 내용의 공식 문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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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결과, 서울시는 오 시장이 처음 서울시장에 취임하고 5개월이 지난 2006년 12월 ICOMOS 본부 관계자 2명을 초청해 자문을 받았던 걸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앞서 열렸던 세운지구 개발 관련 설명회에서 ICOMOS 한국위원회가 "종묘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어 ICOMOS 본부의 판단에 의존하는 입장이라 ICOMOS 본부 측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한 데 따른 조치였다고 시는 밝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찾았던 ICOMOS 본부 관계자 2명이 세운4구역 종로변 뒤쪽 건축물의 높이는 설계의 질과 시각적 기여도 평가에 따라 128m까지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고, 이를 반영해 4구역 높이를 122.3m 이하로 고시(2007. 7. 30)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네스코 측에서는 공식 판단을 전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일까요? 이유는 유네스코와 ICOMOS에 마련된 공식 절차를 당시 서울시가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유네스코의 공식적인 자문 의견을 받기 위한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자문 요청' 의견 전달 → ICOMOS 본부에 관련 내용 확인 요청 → ICOMOS 한국위원회에 관련 내용 확인 요청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확인 결과 보고 → 공식 모니터링 필요성 판단 → 공식 대표단 파견

이러한 일련의 절차를 거쳐 자문 의견을 필요로 하는 문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 기준에 따른 공식 의견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ICOMOS에 소속된 관계자가 개인 자격으로 방문해 개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이런 공식적인 판단 과정과는 차이가 있는 겁니다.

ICOMOS 관계자 A씨는 SBS에 "서울시가 임의로 진행한 내용은 객관성이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ICOMOS 관계자 B씨는 "유네스코 차원의 공식 자문 의견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선 관련 문서를 다 남긴다"며 "이러한 절차와 무관하게 나온 자문을 공식 의견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유네스코 공식 판단이 아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온 개인 의견이 오 시장의 주장에 인용됐던 겁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종묘 코앞에 초고층 건물이 지어진다면, 랜드마크가 아니라 600년 종묘를 훼손한 오세훈 시장의 부끄러운 유산으로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며 "오세훈 시장은 유네스코와 유산청의 지적에 따라 영향평가를 즉시 실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그렇다면, 종묘 인근 재개발 문제에 대해 유네스코의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국내 절차는 무엇일까요? 바로 국내 당국에 의해 이뤄지는 '문화유산 심의'입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지난 2009년부터 2021년 사이 종묘 인근 재개발 문제와 관련해 총 15차례의 심의를 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지난 2021년 2월 17일 열린 심의에서 옥탑을 포함해 청계천변은 71.9m, 종로변은 55m로 높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종묘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스카이라인에 대한 고려'가 심의의 주된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을 서울시로 발송한 공문에선 "도출된 높이는 종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ICOMOS의 권고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위험에 처하지 않으면서, 보존의 적정 균형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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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행정 절차를 마치면 국가유산청장이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도록 직접 요청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서울시는 "그간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지구 지정도 없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한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아울러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 사업의 구체적 범위, 평가 항목, 방식, 절차 등도 미비해서 평가를 위한 구체적인 법적·행정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팽팽한 대치 국면 속에서 지난 4월 유네스코가 요청한 종묘 일대 세계유산영향평가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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