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文翰)을 관장하고, 경연관으로서 국왕의 학문적· 정치적 자문에 응하는 학술적 임무를 맡았다. 이런 업무 성격상 자주 왕에게 조정(朝政)의 옳고 그름을 논하거나 간언하는 일이 잦았고 자연스레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언관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삼사에서 관직생활 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고 이들의 주요 임무는 왕을 비롯해 대소 신료들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힘이 강할 때는 왕권이나 신권의 독주를 막았지만 이들의 힘이 약하거나 당파로 분열될 때는 정치가 문란해졌다.
◈ 왕조 때가 더 나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민주 정체에서 삼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청와대 비서실이다. 사헌부는 민정수석실에, 사간원은 정무수석실이나 민정수석실 기능에 해당한다. 또 홍문관은 대통령의 각종 자문위원회와 정무수석실, 여당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이 과연 과거의 삼사보다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현 상황만 놓고 평가하자면, 21세기 민주 정치를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오히려 수백년 전 왕조 정치를 펼쳤던 조선시대만도 못해 보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된 것은 청와대가 이를 파악한지 무려 26시간이 지난 뒤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에게 아무 때나 불쑥불쑥 보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격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런 사건조차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있다고 봐야 한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청와대 참모들이 지나치게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면서 "참모들이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이 풍토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 청와대 '참모가 없다'
현재 청와대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참모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선 이후 대통령과 동거동락했던 친박계 핵심 실세들이 가운데 극히 일부만 청와대와 내각에 등용되면서 대통령 주변이 거의 대부분 실무형 참모들로만 채워진 결과다.
대통령과 인적 유대가 공고하지 않다보니 상당수 참모들이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기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파악하는데 정신이 없고 특히 윤 전 대변인 사건 처럼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려하기 보다 책임소재를 가리는데만 더 급급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태가 생긴 배경에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책임과 권한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위계질서를 세워주지 못한 청와대 미숙한 조직 운영이 있다. 인사가 시스템보다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뤄지다보니 특정인에게 힘이 쏠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이번 사태로 표출됐다는 지적이다.
◈ '목숨'까지 걸지는 못할 망정…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흔히 '주식회사'에 비유했다. 정치적 신념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모인 사람들이 만든 정권이라는 의미였다. 반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해 한나라당 비주류로 남아 있던 '친박계'는 '박근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 비밀결사(秘密結社)에 빗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당시 큰일이 터질 때면, 친박계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다 박근혜를 대통령 만들자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금, 그런 모습은 찾지 어렵다. 일부에서는 '개국공신'들을 기용하지 않은 대통령의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창출에 기여한 친박계 인사들을 인선 과정에서 상당 부분 배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정권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청와대나 정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당에 남아 있다면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당파적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지만 연산군 10년, 당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의 대간들은 목숨을 걸고 임금의 실정을 비판했다. 결과는 대규모 옥사였다. 갑자사화다. 당시 처벌된 239명 가운데는 삼사의 관원들과 함께 대신들도 있었다.
청와대 참모들과 여당 관계자들이 진정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공직에 나왔다면 '목숨'까지 걸지는 못할 망정 자신의 '직'이라도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명감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민주정체에서 정치인들이 섬겨야 할 주군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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