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이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1985년생, 현재 27살인 박주영은 2022년까지 군대를 가지 않는다. 법적으로 37살까지 병역을 연기했다.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16일 오후 박주영의 법적 대리인인 법무법인 DLS의 이성희 변호사가 "모나코 왕실이 박주영에게 10년 장기체류 자격을 줬다. 병역법상 해외 거주권이 있으면 병역을 미룰 수 있다. 인천·경기지방 병무청이 입대연기를 허가하는 공문을 내줬다"며 한 언론을 통해 박주영의 입대연기 사실을 밝혔다.
이어 병무청은 "박주영 선수가 2008년 9월 1일 영주권 제도가 없는 모나코공국에서 10년이상 장기체류 자격을 얻은 후 AS 모나코 소속 선수로 활동하면서 그 국가에서 계속 거주하였음을 주프랑스공화국대사관을 통해 확인하여 2011년 8월 29일 국외여행을 허가하였다"고 발표했다. 이제 박주영은 경제활동 등 특별한 사유를 어기지 않는 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향후 10년, 자유롭게 외국을 여행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나코에 장기체류 하며 런던을 여행 중인' 박주영이 향후 10년 동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병무청의 발표에 따르면 박주영은 이미 지난 8월부터 자신의 병역연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 '군대에 가야하는데 아스널에서 저리 못 뛰고 있는 박주영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발을 동동 굴렀던 팬들은 급속도로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사실 박주영은 전격 아스널 이적이 결정됐던 지난 해 9월부터 그저 '선택'을 해 오고 있을 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토대로 만든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독일군 장교가 소피에게 두 아이 중 한명을 선택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의 선택에 단순히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축구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던 그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했고, 한 것은 분명하다. 박주영은 자신의 재능을 썩히지 않기 위해 10년 동안 병역을 연기하면서 어떠한 범법행위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는 아스널 입단을 선택했고, 10년 병역연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주영의 '선택'은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곤혹스러움만 더해가고 있다. 비난을 온전히 피할 수야 없었겠지만 박주영의 병역연기 사실이 공개된 시점은 불운했고, 그의 선택은 비난 받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어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그가 법의 테두리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의 선택은 비난 받고 있다. 박주영은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박주영의 몫이다. 38살이 된 그가 병역면제 자격을 얻어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박주영의 선택이고, 책임 또한 그의 몫이다. 사실상의 '이민'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개인의 능력으로 얻은 자격마저 여론 운운하며 부정적인 선택인냥 몰고가는 후폭풍이 안타깝다는 시선도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의 '정서'다. 개인의 능력이 그 사람의 가치와 직결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해도 그 가치의 판단기준은 많은 부분 사회 정서에 근거를 둔다. 세금탈세, 기상천외한 스토리의 불륜행각이 보도될 때에도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그라운드 안과 밖을 철저히 구분한다. 그라운드 안에서 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공과 사'가 뚜렷한 축구종가에도 정서는 존재하고,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구설수에 휘말리는 상황까지 간과하지는 못한다. 어느 사회에나 용인하기 힘든 일들, 정서에 반하는 일들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군대문제'가 그렇다. "군대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박주영이다. 그런데 나는 영주권이 없는 나라에 장기체류하면 10년이나 군대를 연기할 수 있는 지도 몰랐다. 뭔가 허탈하다"는 한 댓글은 박주영을 둘러싼 혼란스러운 여론을 잘 보여준다.
박주영이 군대를 연기했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박주영의 실력이 아니라 박주영의 군대문제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국가의 의무를 '연기'한 선수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사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실력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 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이 진리라면, 박주영의 운명은 분명히 박주영의 것이 되었다. 병역의 의무가 존재하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그의 숙명이지만 아스널에 입단하고, 10년 동안 병역의 의무를 연기한 것은 그가 개척한 운명이다. 2002 월드컵에 나갈 수 없었고, 상무에 갔다 온 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지만 실패하고, K리그로 돌아 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이동국의 운명 역시 그가 개척한 것이다. 누구도 함부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싫든, 좋든 박주영의 선택에 관해 대중들은 각자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아니, 적어도 한 번 쯤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저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며 쿨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박주영의 선택이 그의 몫이었듯이.
'축구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며 한국 축구계에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놀라움을 안겨 주던 선수. 세계적인 명문구단에 입단했지만 '입대'라는 현실적 문제에 얽매여 있다고 여겨졌던 선수. 소속팀에서의 부진에 안타까운 질문을 던져도 언론을 피해왔던 선수 그리고 그의 놀라운 병역연기 소식. 그저, 박주영이 연 것이 정말로 판도라의 상자였기를 바란다. 수 많은 혼란의 시간들이 지나고 난 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 허탈함이 아니라 희망이기를.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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