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단 1편뿐이었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 성인지 결산 발표'에 따르면 영화계 팬데믹 위기감 지속으로 인해 성별 균형‧다양성 지표는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183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여성 감독은 49명(22.8%), 제작자는 77명(24.8%), 프로듀서는 71명(31%), 주연은 81명(40.7%), 각본가는 67명(30.7%), 촬영 감독은 18명(8.1%)으로, 전년 대비 감독, 제작자, 각본가가 증가하고 프로듀서, 주연, 촬영 감독이 감소했다.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 영화 35편 만을 살펴보면, 여성 감독은 '교섭'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 1명(2.7%)뿐이었다. 여성 제작자는 22명(23.9%), 여성 프로듀서는 13명(23.6%), 여성 주연은 9명(25.7%), 여성 각본가는 12명(21.8%)으로 전년 대비 제작자, 프로듀서, 주연이 증가하고 감독, 각본가 수가 감소했다. 촬영 감독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없었다.
한편 지난해 공개된 OTT 오리지널 영화 7편 중 여성 감독과 촬영 감독은 0명, 제작자는 4명(50%), 여성 프로듀서는 3명(37.5%), 여성 주연은 5명(83.3%), 여성 각본가는 1명(16.7%)으로, 전년 대비 여성 감독과 각본가 수가 감소한 반면 주연은 크게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2017~2019년) 기간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모든 직종의 성비 불균형이 완화됐으나,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 영화에선 특히 감독, 프로듀서의 빈도와 비율이 줄고 촬영감독은 0명에 그치는 등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개봉이 늦춰졌던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하며 고예산-남성 중심의 상업 영화가 주요 흥행작을 차지했다. 최근 몇 년 간 독립‧예술 영화에서 여성 감독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에 비해, 고예산‧상업 영화에 참여하는 인력의 성비 불균형은 계속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스크린 안에서 재현되는 성 인지 캐릭터 분석을 위한 벡델테스트(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성평등 테스트) 및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파악하는 7개 항목에 대한 테스트) 결과, 흥행 30위 작품 중 벡델테스트 통과 작품은 증가했고,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되는 작품 편수 또한 증가했다. 여성 캐릭터들이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서사적으로는 성별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에서 다양성 테스트(성적 소수자, 장애인, 다양한 인종·종족·국가'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대상으로 '등장 여부, 주인공 여부, 정형화나 편견에 도전하는지 여부'를 질문하고 각 항목에 차별을 두어 가점하는 방식으로 산출) 결과 수치는 2022년과 비슷했지만, 지난 5년 평균치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이후 한국 영화 창작 인력과 서사의 성별 불균형은 다소 개선되는 듯했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퇴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화계 전반적인 투자가 축소되고 제작이 위축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는 2017년부터 한국 영화 산업 내의 성(性) 평등 현황을 확인하고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성 인지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스크린 밖 창작 인력에 대한 통계 분석과 스크린 안 캐릭터 분석을 통해 성별뿐 아니라 성 정체성, 인종, 국적 등 다양성 재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