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중인 남편이 설정해 놓은 안방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업무상 자료를 빼낸 아내가 선고를 유예받았습니다.
오늘(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전자기록 등 내용 탐지 및 전자기록 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선고 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A 씨는 지난해 1월 집 안방 컴퓨터 주변의 메모지에 로그인 비밀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해 로그인한 뒤 저장돼 있던 남편의 회계 등 업무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복사한 뒤 이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A 씨는 2017년부터 남편과 별거 중이었는데, 남편은 집을 떠나면서 A 씨가 안방 컴퓨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비밀번호를 설정해 둔 상태였습니다.
A 씨 측은 재판에서 "안방 컴퓨터는 부부 공동소유인 데다, 남편이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이므로 권한 없이 기술적 수단을 통해 전자기록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형법 제316조 제2항은 '비밀장치가 된 문서나 전자기록 등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내용을 알아내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 규정의 전자기록이 반드시 '타인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A 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어 "안방 컴퓨터가 부부의 공동소유라고 해도, 그 안에 저장된 자료는 피해자의 것에 해당한다"며 "또 남편이 컴퓨터에 설정한 비밀번호를 피고인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자료를 열람하는 것에 대해 명시적 혹은 묵시적 승낙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 "이런 상태에서 컴퓨터 주변의 메모지에 적힌 비밀번호를 보거나 조합하는 방식으로 알아내 로그인한 것은 형법에서 말하는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내용을 알아낸 것'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 측은 이렇게 알아낸 자료를 통해 남편의 불법행위를 공익신고한 만큼 처벌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이처럼 A 씨의 행동이 공익적 결과로 이어진 면이 있고, 빼낸 정보를 다시 남편에게 돌려줘 업무에 지장이 발생하지 않았던 점 등을 참작해 선고를 유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