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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김사복 아들' 김승필 "진실 밝혀져 감격…어머니도 좋아해"

[인터뷰 ①] '김사복 아들' 김승필 "진실 밝혀져 감격…어머니도 좋아해"
"감격스럽습니다"

5일 밤 11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지난한 여정의 종착점이 '진실'로 귀결됐기에 나올 수 있는 환희의 음성이었다.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59) 씨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개봉과 함께 아버지의 존재를 세상에 인정받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시작됐다. 대다수는 믿지 않았다. 누군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등장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김승필 씨는 믿었다. '진실'은 밝혀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아버지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숨은 공신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무려 37년만의 일이었다. 

김승필 씨는 진실이 밝혀진 소감을 묻는 말에 "감격스럽습니다"라는 짧고 굵은 한마디로 답했다.

지난달 5일 트위터를 개설하고 글을 올렸을 때도 정황과 증언은 모두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가 함께 찍은 사진 말이다. 그러나 기어코 찾아냈다.

"앞서 공개한 사진들은 앨범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애만 태우고 있었죠. 그러다 며칠 전 책장 속에 끼워져있던 이 사진을 발견했어요. 이게 없었으면 계속 가슴앓이만 했을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인터뷰①] '김사복 아들' 김승필 "진실 밝혀져 감격…어머니도 좋아해"
공개한 사진은 김사복 씨가 외국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이다. 사진 속 한국 남자는 김사복 씨고, 옆에 앉은 외국인은 위르겐 힌츠페터다. 1980년 힌츠페터와 함께 독일 TV방송인 ARD-NDR에 소속돼 일본 특파원을 지낸 페터 크레입스는 사진 속 인물이 힌츠페터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더불어 6일 오전 독일에 있는 힌츠페터의 미망인도 사진 속 남자가 남편이 맞다고 전해왔다. 

김승필 씨는 사진에 대해 "1980년 5.18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버지와 힌츠페터 씨가 민중운동가 함석헌 선생을 인터뷰하러 갔다가 기념으로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그려진1980년 5월의 이야기는 아버지에게서 익히 들어온 것이었다. 팔레스 호텔에서 2대의 호텔 택시를 운영했던 김사복 씨는 외신 기자들을 비롯한 외국인 VIP 손님을 고객으로 상대했다. 

"평소에 밖에서의 일을 잘 이야기하지 않은 편이셨는데 그날은 가족들에게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같은 민족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면서요. 그때는 간략하게 얘기해주셨고, 후에 장남인 저에게 그날의 참상을 자세히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2~3일 후에는 저를 광화문 근처에 있는 외신센터에 데려가셨어요. 거기에서 피터(위르겐 힌츠페터)씨가 찍은 VTR을 독일 기자분과 NHK 기자분들과 함께 봤던 기억이 나요"

김승필 씨는 당시 나이 22살이었다. 언론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절인 만큼 남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김 씨는 "독일 기자분들과 조선호텔 방에서 같이 차도 마시면서 지금(5.18)의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다가 기자 한 분이 '방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 모르니 여기서 이야기하지 맙시다' 할 정도였어요"라고 전했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했다. 아버지가 호텔 택시를 운영하셔서 택시조합에 등록이 안 된 탓에 아버지의 생사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찾을 수 없었던 제작진의 고초를 이해한다고도 했다.
[인터뷰①] '김사복 아들' 김승필 "진실 밝혀져 감격…어머니도 좋아해"
그는 아버지가 직업적 소명을 다한 평범한 소시민이었다는 것을 밝히면서도 인권주의자였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힌츠페터 씨를 광주에 모시고 간 것은 소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확고한 소신 때문이셨으리라고 봐요. 왜냐면 그분은 인권주의자셨거든요.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일을 하면서 국내 정치, 사회 돌아가는 것에 늘 관심을 가지셨어요. 힌츠페터씨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조선 호텔로 모시고 가면서 당시 광주의 상황을 브리핑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아버지 김사복 씨는 198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는 생존해있다. 79세의 노모는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지만, 남편의 존재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널리 알려진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제가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출연한 것을 4번이나 보셨어요. '네가 왜 TV에 나오냐', '왜 너희 아버지 이름이 왜 자꾸 언급되는거냐'고 하셔서 아버지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때 하신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있다고 하니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어요. 그리고 두 번째 볼 때도 또 똑같은 질문을 하시고, 다시 이야기하고…. 그렇게 4번을 봤는데도 볼 때마다 행복해하세요"

김승필 씨는 아버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만큼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영화를 계기로 아버지의 일이 알려지고, 국민들의 칭찬을 받게 됐어요. 잠깐 기억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왜 광주에서 그런 일을 하셨는지를 제대로 알리는게 아들의 도리가 아닌가 싶어요. 무엇보다 아버지의 유해를 망월동 옛 5,18 묘역에 모셨으면 하는게 바람입니다. 어찌보면 저희 아버지는 운이 좋으신 거에요. 힌츠페터 씨가 이야기 해주셔서 세상에 알려졌으니까요. 그러나 아버님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신 일을 하셨음에도 알려지지 않으신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분들을 찾고 기리는데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사진=故 김사복과 위르겐 힌츠페터, 김승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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