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작업에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취재원이 알려준 경로를 통해 바이럴 마케팅에 쓰인다는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직접 구경에 나섰죠.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이 잘 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숨어있는 곳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제목과 그 밑에 달린 사람들의 의견만 봐도 '아, 이건 이럴 때 필요한 프로그램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시켜보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나돌고 있는데 어떤 프로그램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알아내기 어려웠고, 잘못된 프로그램을 내려 받았다가 각종 자료와 연락처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날려먹을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죠. 믿을만한 전문가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온 종일 신중하게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먼저, 작성한 글의 조회수를 늘려주는 프로그램.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드나느는 정상적인 카페에서 시험을 하면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제가 대학시절 조 모임을 위해 만들었고, 이제는 모두가 나간 인터넷 카페에서 조심스럽게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올리고, 실행시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조회 수 늘리기 프로그램을 실행시켰습니다. 얼마만큼 조회수를 늘리기를 원하는지를 묻는 창에 통 크게 1000이라고 적었죠.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순식간에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이 1000명이 읽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활발히 운영되는 카페였다면 아마 그 조회수를 본 모든 사람이 '와~천 명이나 읽었어? 글이 올라온자마자? 도대체 뭔 글인데? ' 하며 클릭할 게 뻔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댓글을 입력하는 것도 조작이 가능한 영역에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우호적인 댓글, 예를 들어 '글 참 잘 쓰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등을 미리 정해놓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고스란히 여러사람의 아이디로 댓글이 달렸습니다. 앞에 프로그램이랑 함께 실행하면 조회수도 높고 댓글도 많네? 어? 이 사람 말 믿어도 되겠는걸? 착각하는 건 한순간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SNS도 프로그램의 먹잇감이 되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사람을 찾아서 친구 신청을 하지 않아도, 프로그램만 돌리면 30초 정도에 한 명씩 친구 맺기를 하는 일이 눈 앞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거든요. 블로그를 상위에 등록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카페에 자동 가입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게시 글을 도배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바이럴 마케팅에 쓰이는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제가 하도 놀라니까 취재원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나돌기 시작한 지 2-3년 됐다며 정말 몰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가끔 인터넷에서 일명 '알바'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만 생각해 왔을 뿐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놀란 금붕어마냥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습니다. 정말 잘 만든 프로그램이 수백명 몫을 한다고 해야하는 것일까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궁금증은 생겨났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아이디가 필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작업을 계속하려면 여러 사람의 아이디가 필요할텐데...지인들로부터 얻어내는 것일까? 사돈 팔촌의 아이디를 총동원할까? 이번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아이디를 산다는 겁니다. 아니, 아이디를 도대체 어떻게 사나. 주로 구입하는 원천은 게임사이트라고 했습니다. 게임머니를 사고 팔 때 주민번호가 필요한 데 이를 이용한다는 겁니다. 게임 사이트에는 아이들이 많겠죠? 그래서 앞에 취재파일 1에 적은 것처럼 어른인 척 하지만 작성자는 미성년자인 글들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겁니다. 취재원은 그들이 이런 아이디를 적어도 수천 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 블로거를 프로 블로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상위 검색에 랭크될 수 있도록 하는 그 구조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금이 묻힌 곳이 아닌데 인부와 장비를 열심히 투입해 땅을 파 봤자 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마찬가지로 내가 글을 도배하는 방식, 내가 블로그를 관리하는 방식이 틀렸다면 검색해서 바로 눈에 뜨인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이들은 인터넷 바다에서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알고리즘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알고리즘이 계속 바뀌는데 그걸 알아내고 있다니. 순간 스티그 라르손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 살란데르. 겉으로는 빼빼마른 히피 타입의 여성이지만 사실은 천재 해커가 떠오르면서 웃음이 피식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작업 난이도는 아까 잠깐 말한 적 있지만 작업하려는 단어가 얼마나 경쟁업자가 있는지, 검색 결과로 나오는 글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달랐습니다. 가장 작업이 어렵고 사실상 기존에 있는 검색 1위를 탈환하기가 매우 어려운 작업 단어를 이들은 '슈퍼키'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대출, 치과, 대리운전, 초콜렛 이런 것들이 예로 꼽혔습니다. 이런 슈퍼키들은 고객이 요구한다고 해도 쉽사리 상위에 올려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때는 다른 방법을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연관되는 단어를 앞 뒤로 끼워서 작업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치과'라는 단어만 가지고는 수많은 치과들을 물리치기 어려우니 약간의 꼼수로 'xx역 치과' 이렇게 친다는 겁니다. 작업은 쉬워지고 그 근처에서 치과를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먹혀들고. 대단하죠?
프로그램이 어떤 효력이 있는지 직접 테스트 해 보고, 결과를 함께 지켜본 전문가는 이 프로그램들이 대단히 정교한 것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컴퓨터 언어가 조잡한, 한마디로 얼기설기 해 보이는 것도 많다는 거죠. 하지만 어떤 사이트가 어떤 구조로 설계되어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프로그램들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몇몇 사이트에 문의를 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고 이렇게 사용된다. 다행히 모르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이런 부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수백명의 모니터 요원을 고용해 늘 감시하고, 이상한 징후가 보이면 바로바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감시하고 치료하는 백신이 있어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있는 것처럼, 그 시스템을 우회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공감했습니다. 정부사이트, 유명하다는 친목도모 사이트도 모조리 해킹해 고귀한 정보를 줄줄 빼낼 수 있는 세상에서 뭐가 어려울까요.
아마도 분명히, 바이럴 마케팅 업자와 이런 홍보 방식에 중독된 여러 병원이나 기업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제대로 입소문만 타면 대박이 터지고, 환자가 줄을 이을테니까요. 바이럴 마케팅에 쏟은 기존의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일반 제품도 거짓과 과장으로 홍보하면 문제겠지만 의료분야는 그 심각성이 더 하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실력을 갖추지 못한, 어쩌면 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병원이 바이럴을 통해 흥한다면 그것 참 아찔하지 않나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익명성에 기대 인터넷에 올리는 글들이 갖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한 번 더 수상한 구석이 없나 살펴봐야겠다 다짐합니다. 컨텐츠가 빈약하거나 뭔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느낌이 있는데도 갑자기 인기글이 되거나 인기 블로그가 되면 더더욱 주의깊게 보려고요.
정부가 이번에 무분별하게 넘쳐났던 인터넷 의료 광고에 대해 사전 심의를 하겠다고 합니다. 기존에 비해 심의대상이 훨씬 넓어진 것은 칭찬해 줄만한 일입니다. 뒤늦은 감도 없지는 않지만요. 앞으로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런 거짓 입소문 마케팅에도 철퇴를 가해주셨으면. 아울러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들도 자체 모니터에서 적발된 사례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이미 썩은 물인데,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