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가 이번에 연주하는 곡은 핀란드의 국민작곡가로 꼽히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시벨리우스는 낭만적이면서도 격정적인 관현악곡 '핀란디아'로 제일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에 못지 않은 명곡입니다. 장영주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해서, 그 곡 이야기로 인터뷰를 풀어나갔습니다.
기자: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자주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연주회를 하면 당사자가 여럿인데, 연주곡은 어떻게 정하나요?
장영주: 네 당사자가 다 동의해야죠. 독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저, 현지 기획사가 다 합의해야 정해져요. (이번 연주회에는 러시아의 대표적 악단인 상뜨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이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지휘로 참여합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저희 공연.문화 전문기자인 김수현 기자의 글이 여러 편 있습니다.)
기자: 혹시 이 곡이 지겨울 때는 없나요? ^^
장: 이 곡, 오래 했죠. 8살 때부터 했으니까요. (*참고로, 장영주씨는 이제 만 서른하나를 바라봅니다.) 옛날부터 너무나 사랑하던 곡이예요. 레코딩은 17살 되어서야 했지만요. 어떤 곡은 몇백 번씩 하다보면 지쳐서 '아, 이 곡은 좀 쉬어야겠다' 싶을 때도 있는데,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기자: 8살 때부터 이 곡을 했다구요? 대단한 난곡인데요?
장: (제가 너무 깜짝 놀라니까, 웃으면서) 돼요. 4분의 1 사이즈 바이올린으로요. 애가 작고 악기가 작으니까, 오케스트라도 줄여서 하죠.
기자: 아니, 기술적으로야 그렇다고 하지만, 그 곡에 담긴 정서 같은 것은 8살 어린이가 표현하기 힘들텐데?
장: 어렸을 땐 이 곡이 굉장히 테크니컬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도 많고, 실내악적인 요소도 많아요. 열 몇살 때던가, 핀란드에 가서 시벨리우스가 살던 집에도 찾아갔어요. 그가 작곡하던 책상에도 앉아보고, 그가 치던 피아노도 앉아서 쳐 봤어요. 쳐 보게 놔 두더라고요.
기자: 그렇게 해 보고 나면, 아무래도 그의 곡을 연주할 때, 느낌이 다르겠네요.
장: 좀 다르죠. 그게 1월이었는데.. 1월이면 무지하게 추워요. 해가 굉장히 짧고요. 무지 아름답긴 한데요..무섭게 추워요. 밖에 나가면 막 아파요. 너무 추워서. 하하..
기자: 장영주 씨 인터뷰를 하러 오기 전에, 시벨리우스 협주곡 영주씨가 녹음한 음반을 들어 봐야 되겠더라고요. 1998년에 마리스 얀손스-베를린필과 함께 한 연주죠? 서울 집에는 CD가 있는데, 여기서 새로 구하려니 갑자기 마땅히 CD 사러갈 데도 없더군요. 요즘은 뉴욕 시내에 오프라인 CD가게를 보기 어려우니까...그래서 아마존에서 mp3 버전으로 다운받아 들어봤어요. 참 깊고, 아름답고, 변화무쌍하고 정열적이었는데... 장영주는 이 곡을 연주하면서 어떤 정경을 눈앞에 그렸을까가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햇살 비치는 가을 숲일까, 아니면 짙고 푸른 하늘에 창백한 달이 걸린 겨울 밤일까...
장: 겨울이죠! 겨울! 너무나 춥고, 어둡고, 이모셔널(emotional)한 겨울이요. 그런데, 이 곡은 한 스타일로 쭈욱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스타일로 가요. 아주 차갑기도 하고, 아주 뜨겁게 정열적(passionate)이기도 하고, 아주 대조적인 요소가 많죠.
기자: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 구소련의 전설인 므라빈스키의 레닌그라드 필의 후예 아닙니까? 같이 자주 연주해 보셨죠? 어떤 스타일인가요?
장: 아주 따뜻한 소리에, '불(Fire)이 많은' 오케트스라죠. '성격 있다'고 그러나요? 하하하. '성격이 아주 많고'요.. 안전하게 가는 오케스트라는 절대 아니예요.
기자: 그런 오케스트라와, 무대 매너부터 열정적인 장영주 씨가 만나서 들려줄 시벨리우스는?
장: 아주 "불(fire)이 많고", 그리고 아름다운 시벨리우스 연주가 될 거예요. 테크니컬한 것 뿐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젠틀하고, 얼마나 쿨한 면도 있는지.. 그리고, 팀워크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고, 무대위에서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들어봐 주세요.
기자: 그런데, 요즘 연주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부분에서 허리를 뒤로 젖히는 습관이 있지요? 혹시 일부러 그렇게..? ^^
장: 하하, 그건 아니구요. 원래는 발로 무대 바닥을 쿵! 찧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운드 엔지니어가 그거 듣기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리를 억제하니까 저절로 윗몸이 젖혀지네요. (웃음)
기자: 오늘 하루만 필라델피아 집에 있고, 다시 석달짜리 연주여행 가는 거라면서요? 한국도 그 길에 들르는 거구요?
장: 네. 그래서, 짐 싸는 게 보통 일이 아니예요.
기자: 연주복 드레스만 해도 부피가 엄청나겠네요?
장: 네, 그래서 제가 확 퍼진, 큰 드레스를 별로 안 입어요.^^ 내일은 뉴왁(맨하탄에서 허드슨 강건너, 공항이 있는 동네)에서 프라하로 떠나서, 불가리아, 런던, 홍콩 갔다가 한국으로 가요. 엄마가 한국으로 오실 때 가방을 하나 싸갖고 오실 거예요. 그 다음엔 남미 쪽으로 가는데, 그때는 미국 매니저가 또 다른 가방을 하나 갖고 올 거고요.
기자: 짐에는 옷 말고는 주로 뭐가 들어갑니까?
장: 저는 악보를 많이 갖고 다녀요. 독주 부분 뿐 아니라 스코어(오케스트라 전체 파트가 다 나오는 총보)를 늘 같이 보는데, 그게 엄청 무거워요.
이 외에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음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대화도 나누었는데, 여기서는 이만 줄이기로 합니다. 오케스트라 총보는 정말 무겁습니다. 그걸 끌고 다니며 악보를 공부한다는 건 음악을 대하는 장영주의 자세가 얼마나 깊이있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러면 지휘도 한 번..?" 하고 물어봤더니, 장영주 씨는, "지휘는 제가 못 할 껄 잘 알아요."하면서 웃었습니다. 바이올린이 다른 악기보다 레퍼토리가 워낙 많아서, 지금도 새로운 곡을 공부하고 있다면서,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힘들고 지칠 때까지 계속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