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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 두 가족

◎앵커: 마주한 북쪽의 아내와 남쪽의 아내는 어색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이산가족 부부로 함께 방북길에 오른 이선행, 이송자 부부의 가족상 봉, 박병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피난길에 대동강 다리가 폭파되면서 아내는 물론 두 아들과 헤어진 이선행 할아버지. 먼저 월남한 남편을 찾아 떠났다가 혼자 된 이송자 할머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홀로 살던 두 사람은 30년 전부터 서로를 위로하며 동고동락해 왔습니다. 북쪽 가족들에게 미안해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 고 사는 두 사람.

<이선행(80): 이선행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 세요.> <두 분 다 계셨어요.> <이선행(80): 이송자까지요?> <예, 감사합니다.> 노부부는 가족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상봉의 그 날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이선행(80): 내가 또 감사한 것은 애들이 그렇 게 착한 것은 당신을 닮아서 착하다. 이 말 듣 고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날 나쁜놈이라고 욕 하지 않고...> 어제에 이은 개별상봉 이틀째, 이선행 할아버지 는 50년 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미안함을 처음 으로 아내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선행(80): 어머니 잘 모셔... 너희들은 걱정 안한다, 어머니만... 이제 늙으면 친구들밖에 없 어요.> 전쟁통에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것조차 몰랐던 이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들에게 당부합니다.

<이송자(81): 신용 잃지 말고 어디가든지 착실 히 남들에게 신용잃지 말고 건강히 살기를 바 란다.> 같은 시각, 같은 호텔, 다른 방에서는 이선행 할아버지의 남쪽 아내 이송자 할머니가 외아들 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북녘의 남편은 이미 세 상을 떠났습니다.

<이송자(81): 같이 했으면 내가 잘 키웠을 텐 데, 엄마구실 못해서 미안해, 감사하고 기쁜거 야.> 오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선행 할아버지는 생 전 처음 아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고 마냥 흐 뭇해 합니다.

<많이 드십시오.> 서너 칸 건너 테이블에서는 이송자 할머니가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를 꼭 닮은 아들을 볼 때마다 죽은 남편 생각 에 눈시울을 적십니다. 북한 안내원이 찾아와 이선행 할아버지 가족과 동석을 권유하자 순순 히 응하는 이송자 할머니.

<그집 식구가 많아요. 우리가 가지.> 남쪽 아내와 북쪽 아내의 어색한 만남, 하지만 이송자 할머니의 넓은 마음에 어색함도 잠시뿐 이었습니다.

<이송자(81): 한집만 나타났으면 섭섭한 것이 나, 이렇게 다 만났으니 감사한 거야.> 남쪽 아내와 북쪽 아내의 건배 장면을 흐뭇하 게 지켜보던 이선행 할아버지도 남쪽 아내의 아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선행(80): 난 어머니의 머슴이여. 어머니의 머슴이니까 안심하고 걱정하지 말고...> 이선행 할아버지의 큰아들도 이송자 할머니에 게 술을 올립니다.

<이진일(56, 이선행 씨 아들): 어머니, 우리 아 버님 돌봐주시느라 수고하십니다. 우리 아버님 잘돌보시고 통일의 그날까지 건강하십시오. 제 가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로의 어머니에게 술을 따르는 북녘 두 아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르는 아내와 아들과 남편, 서로의 건강을 다 시 만날 날을 기원하며 건배를 외쳐보지만 50 년 그리움을 달래기에는 3박 4일은 너무너무 짧았습니다.

SBS 박병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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