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간 16일 목요일 새벽,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이 75bp 금리인상을 발표했다. (0.75 %p, bp는 베이시스 포인트의 약자로, 0.01퍼센트포인트를 의미함.) 얼마전까지만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1994년 이후 28년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었다. 그 전엔 시장이 50bp 인상을 전망하며 '빅 스텝'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그래서 이번엔 '빅'보다 큰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말이 나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악재다. 그런데도, 며칠째 무섭도록 하락하던 미국 증시는 이날 큰 희소식이라도 만난 것처럼 급반등으로 마감했다(한국시간 목요일 새벽). 하지만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에 확인한 미국 장은 다시 크게 하락했다. 다우존스 지수는 3만선이 깨지며 1년5개월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어서 열린 금요일 한국시장도 속절없이 떨어졌다.
'데드캣 바운스'에 걸렸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죽은 고양이도 높은 데서 떨어지면 튀어오른다'는 뜻의 미국 증시 속어다. '이제 바닥이겠지.'하고 저점매수 들어갔다가 추가 하락에 물리는 상황을 표현한다.
'75bp 자이언트 스텝' 소동의 전말
그런데 지난 10일에 발표된 미국 경제통계는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4월에 살짝 꺾였나 싶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5월 8.6%로 다시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연준이 기준금리를 50bp만 올리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심각한데 연준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소리가 나올 상황이 조성됐다. 시장은 예상과 다른 것, 예상할 수 없는 것을 싫어한다. 연준이 75bp 인상을 발표하자, 시장은 일단 환호하며 안도 랠리를 펼쳤다. 예상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 생각해보니 경제가 좋아질 일이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금리인상의 자이언트 스텝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걸 견뎌낼 경기는 없다. 다시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비유: 50대 맞을래 75대 맞을래
사고 친 학생들은 패닉했다. 50대라면 어찌어찌 견디겠는데, 75대 맞다간 죽든지 선생님을 들이받든지 뭔 사고를 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이 설마… 잘못 들은거 아냐?'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며칠만에 중론은 정말 75대를 맞을 것 같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선 이제 50대만 맞으면 오히려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겨났다. 차라리 이번에 75대 맞고 끝내면 좋겠는데 나중에 또 무슨 트집을 잡아 두고두고 괴롭히려고… 하는 두려움이 싹튼 것이다. 이윽고 매타작이 벌어지는 당일. 예상대로 학생들은 75대를 맞았다. 죽도록 아팠지만 하여튼 일단 뒤끝은 남지 않게 됐다며 안도했고, 하교 후 분식집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허벅지와 엉덩이엔 피멍이 들었고,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부모님은 여전히 학교에 불려와야 하고, 불탄 집기류까지 물어내야 할 판이다. 다시 절망감이 학생들을 짓누른다. 최근 며칠간의 미국 증시 상황을 비유하자면 이런 식이 아닐까.
'퍼펙트 스톰'은 그리 간단하게 지나가지 않는다
다시 인플레이션을 화재에 비유하자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각국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풀어놓은 건 마른 들판에 기름을 흥건하게 부어놓은 격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기에 담배꽁초를 던진 격이 됐다. 물가가 뛸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아무 데서나 가장 값싼 데서 사온다'던 공급망의 원칙이 깨지고, 필요한 물건을 제때 예전 값에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각국이 성장은 둔화되고 물가는 오르고 재정은 부실해지고 국제수지도 나빠지는 복합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을까?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구성하는 악재들을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국제유가,
석유, 올해도 부족, 내년에도 부족
석유는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다. 전기 생산, 수송, 냉난방, 화학원료 등 모든 것에 쓰인다. 그런데 지금 석유 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다시 활발한 경제활동을 시작했는데, 세계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수출하던 석유류는 하루 3백만 배럴이 넘는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지난5월말 '올 연말까지 러시아 석유 수입을 90% 줄이겠다'고 합의했다. 적어도 2백60만 배럴 이상의 물량이 다른 곳에서 나와야 하는데,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이달 정례 회의에서 증산에 합의한 물량은 하루 65만 배럴이 채 안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 담당 장관 수하일 마즈루아이는 이러한 공급부족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3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치솟는 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어 백악관 내부의 좌절감이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달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 최고권력자인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석유 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할 방침이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는 분위기다.
석유 뿐 아니라 곡물, 광물 등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도 뛰고 있다.
아직은 견조한 미국의 소비…인플레 잡으려면 갈 길 멀다
이 상황은 물이 반쯤 찬 컵처럼,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여전히 돈을 활발하게 쓰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물가가 잡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한편으론, 저축이 줄면 일자리에 복귀하는 사람이 늘고 소비도 점차 줄어들 것이니 인플레가 차차 수그러들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한편, 더이상 경제성장은 어려우며 이제 경기가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쪽이든, 아직은 인플레이션의 정점을 찍었다고 하기엔 섣부른 국면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오른 물가에도 불구하고 지출을 계속하고 있지만, 가계부 사정은 예전같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미국 소매판매 그래프는 아래와 같은 양상이다. 소비지출의 액수 자체는 늘고 있지만 부풀려진 물가를 감안해 조정해보면 조금씩 줄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소비자는 가만히 앉아서 구매력이 '순삭'당한다. 인플레가 그래서 무섭다.
성장은 기대하지 말라…인플레 잡는 게 우선
각국은 앞다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중이다. 세계금융의 중심인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고 달러를 거둬들여 수요를 식히겠다는데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무역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물건 만드는 원료의 값은 점점 오르고 고객님들 나라의 경기는 차차 식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면이라서다.
우리가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경제상황과 관련해 정부, 기업, 가계 모두 안전벨트 단단히 매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부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이런 상황에 투자를 생각하신다면…
이럴 때 용기있게 저점매수에 나서야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실제로 변동성을 이용해 돈을 버는 투자기법이 있고, 성공한 투자자들은 남들이 공포에 떨 때 용기를 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이 기사를 보는 분들은 이런 부분도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최근 월가의 기관투자가인 블랙록(BlackRock)은 앞으로 6~12개월간 주식에 대해 '중립'을 유지한다며 "왜 저가매수에 나서지 않는가"라는 자료를 냈다. 간단히 요약하면 '금리가 어디까지 오르고 기업들의 수익성은 어디까지 나빠질지 모르는데, 아직 충분히 싸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함께 읽기 좋은 기사 : 뉴스쉽 5월21일자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 -거품붕괴와 저성장의 도래'
[구성: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