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 생활과 외과계 의사 생활
CCTV 속 참 나쁜 의사들
성형외과 수술실 바닥에 피가 흥건합니다.
의료진은 환자를 지혈하려 애쓰고 대걸레로 바닥의 피를 닦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두 간호조무사. 의사는 없습니다.
환자는 과다출혈로 한시가 급한데, 간호조무사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습니다. 영상 속 환자 당시 25세 권대희 씨는 수술 49일 후 숨졌습니다.
다른 병원의 수술실 CCTV에는 의사 대신 의료기구 영업사원이 등장한다. 그 병원에서 수술받은 49세 남성은 주요 척추 신경이 손상돼 대소변을 못 가리고 현재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 척추수술 후 기저귀 찬 49살…"대리수술 물증이 없으니"
"CCTV 사건이 기사화되지 않았다면 제가 의사가 아닌 사람한테 수술받은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언론에 공개된 수술실 CCTV 속 참 나쁜 의사를 보고 있노라면 수술실 CCTV 법안을 절대적으로 찬성하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CCTV 법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vs "그런데, 조 기자님"
"그런데 조 기자님, 저요, 드라마 끊었습니다.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밤늦게까지 보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어느 날 아침에 수술실 들어가는데, 환자의 수술 계획과 드라마 장면이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끊었습니다."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 전 미리 머릿속으로 수술을 해본다. 수술 전날까지 수십 번 했을지라도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에 반드시 또 하는데, 그때 전날 밤 보았던 드라마 장면이 방해를 했던 것 같다. 그는 수술실 CCTV가 수술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슬의생에서 신경외과 자문을 했던 의국 후배 교수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그가 전공의 2년 차일 때 나는 전임의 과정을 함께 했는데, 그때 그는 화장실을 참 자주 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습관이 좋았다. 그는 위험도가 높은 뇌종양, 뇌출혈 환자의 수술을 앞뒀을 때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으니까. 생명이 걸린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는, 전문의든 전공의든, 공통된 마음가짐이 딱 하나 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를 꼭 살려야겠다'는 닭살 돋는 문장이 아니다. 환자는 의사가 살리는 게 아니라 단지 환자가 스스로 회복하는 걸 돕는 것뿐이라는 건 전공의 시절 현장에서 직감할 수 있으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참여한 수술에서 단 1도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털끝만 한 실수도 하지 않겠다는 긴장감이 좋아하던 드라마를 끊게 하고, 수술 전에 화장실을 자주 드나드는 우스꽝스러운 습관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수술실 CCTV 법안을 걱정하고 있다.
국민의 준엄한 경고
의료계가 먼저 의료 과실 은폐와 대리수술에 대해 피해자와 국민께 충분히 사과하고, 국민은 의료계를 다시 믿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은 '슬의생'같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외과계 의사들이 'CCTV가 있으니, 살살 하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 장면은 드라마에서조차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