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결원) 직원 A 씨와 B 씨는 2016년 6월, 부산시청 바로 맞은편에 있는 초역세권 아파트에 당첨됐다. 2014년 말 부산으로 이전한 예결원 직원들의 주거 안정을 돕기 위한 특공 제도를 통해서였다. 당시 일반 청약 경쟁률은 평균 138:1로 집계됐는데, 이전 기관 특공은 통상 평균 경쟁률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경쟁률 138:1' 아파트 특공으로 손쉽게 당첨된 예결원 직원
B 씨는 당첨 당시, 부산지역인재 전형으로 입사한 신입 직원으로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공은 지방으로 사실상 강제로 이전된 공공기관 직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손쉽게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인데, A 씨는 회사 사택, B 씨는 부모님 집이라는 주거지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제도 취지에 비춰볼 때, 특공을 받을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다.
사장 도장 무단으로 찍은 서류로 특공 분양 확정
자격의 대표적 요건은 당사자가 지방으로 이전한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지, 가족 중 특공으로 과거에 당첨된 적은 없는지 ( 국토부령에 따르면 법적으로 가족인 사람 중 특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특공 자격이 없다) 등인데, 차민철 법무법인 문장 대표변호사는 "국토부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해당 기관장에게 실질적 자격 심사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자격확인서 발급 여부 등에 대한 권한은 기관장에게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A 씨와 B 씨는 자격확인서 발급을 회사에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았다. 확인서 샘플은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데, 이것을 다운 받아 작성한 뒤 예결원 사장 도장은 회사 총무부에서 자신들이 임의로 찍어 제출한 것이다. 당연히 회사가 정상 발급한 확인서 대상자 명단, 즉 확인 대장에 이들의 이름은 없었다.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해당 가능성"...고발 없고, 특공 취소도 안 돼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예결원 직원 A 씨와 B 씨의 행위는 아파트 당첨 1년 뒤에야 드러났다. 예결원이 부산시의 요청으로 특공 당첨자 명단과 예결원의 확인서 발급대장 비교 과정에서다. 하지만 특공은 취소되지 않았고, 두 사람은 형사 고발되지도 않았다. 지차체 등 특공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 부처에 보고되지도 않았다.
직원들이 확인서를 무단 발급한 것이라 직접 적용 가능성은 검토가 필요하지만, 국토부 고시는 '특공 대상자 확인을 허위로 한 경우, 지자체장은 그 기관 종사자에 대한 특공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사람의 행위가 지자체에 보고됐다면, 예결원 직원들이 향후 해당 지역에서 특공을 받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확인서 발급 거절했을 것 명백"...하지만 견책 · 경고에 그쳐
구멍 뚫린 도장 관리와 허술한 확인서 발급 체계 등을 노출하며 직원에게 인기 아파트를 안긴 셈이 된 예결원이지만, 두 사람의 사례를 적발해 인사위(징계위)에 올렸다는 것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두 사람에 대한 징계는 가장 낮은 조치인 견책, 그리고 그보다도 낮은 주의 경고였다. 범법에 가까운 행위로 특공을 손에 쥐었다면, 특공 취지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라도 인사가 이뤄져야 했지만, A 씨와 B 씨는 지난해 초 서울로 발령받았다.
그래도 인사위 초반에는 이들에 대한 엄중 조치 의지가 피력되기는 한 듯해 보인다. A 씨와 B 씨는 "확인서 발급 절차를 제대로 몰랐다며, 고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인사위원은 "(두 사람의 행위는) 사실상 사문서를 위조하여 행사한 사건"이라며, "단순한 견책이나 경고로 마무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예결원 측은 징계 조서에서 "당사자의 청약 사실을 알았으면 확인서 발급을 거절하였을 것이 명백하다"고 적기도 했다. 두 사람이 특공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특공을 받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혼인 신고 미루고 무단 발급 서류로 특공 당첨된 A 씨
A 씨에 대한 비판 내지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더 있었다. 인사 담당 인사위 위원은 "(A 씨는) 결혼 후 사택을 받은 상황에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혼인 신고를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인사위에 출석한 A 씨가 "혼인 신고를 미룬 건 사적인 이유 때문이지 특공 자격 유지를 위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인사위원은 "A 씨가 회사를 통해 확인받는 절차를 거쳤다면 적어도 A 씨의 경우는 스크린이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하다"고 밝혔다.
솜방망이 징계 속에 특공 아파트로 5억 원 차익
A 씨는 서울 발령 직전인 2019년 말 아파트를 매도한 걸로 알려졌는데 1억 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걸로 보인다. A 씨와 B 씨가 분양받은 아파트가 2019년 12월 입주가 시작됐기 때문에 A 씨는 분양받은 아파트에 실거주한 적이 없거나 실거주 기간이 극히 짧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서울로 발령받은 B 씨의 아파트는 현재 가족이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시세는 분양가 대비 최대 5억 원가량 올랐다.
민주당 반대 속에 진전 없는 특공 국정조사
이에 대해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범죄에 해당함에도 고발하지 않은 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조직문화의 전형적인 발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결원과 같은 사례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특공 제도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고, 필요한 제도 개선과 위법 행위에 대한 수사 의뢰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관평원 사태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 5월, 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 등 야3당은 세종시 특공 등 특공 전반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념적 색채가 다른 정당, 그리고 합당 등을 놓고 이견이 있는 정당들이 한 목소리를 낸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특공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사실상 반대 속에 국회 국정조사는 아직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