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아직 남자 친구도 없는데…"
800kg짜리 기계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던 순간 아빠 임 씨가 한 말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열 달이 지나고, 딸은 아빠를 위해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회사 책임자들이 사고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임 씨 딸)
눈이 내리던 지난 1월 5일 아침. 임 씨는 충남 아산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A 사)에 시험용 기계를 납품하던 중이었습니다. 새벽부터 경기도 자신의 공장에서 기계를 실어 지인, 화물차 기사와 나선 출장이었습니다.
임 씨는 30년 동안 자동차 부품을 시험하는 장비를 만든 전문가였습니다. 한때 중국 공장에만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됐지만, 4년 전 '사드 보복 조치' 여파로 지난해 말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 임 씨에게 1억 원이 넘는 장비를 납품하게 된 이번 계약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신정에도 쉬지 않고 기계를 닦고 정리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너무 좋아했죠, 워낙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라. 원래 남편이 중국 출장을 갔다 와서 지난해 12월 말에 기계 납품을 하려고 했는데, A사에서 '종무식이 있다'고 오지 말라고 했대요. 1월 3일까지 신정 연휴였고, 다음날 내려가려고 했더니 그땐 '시무식이라고 안 된다'고 했대요. 그래서 1월 5일에 간 거예요. 새벽에 출장을 갔는데, 몇 시간 만에 그렇게 될 거라고는…" (임 씨 아내)
임 씨 일행이 가져간 기계는 총 네 대. A 사 직원이 직접 지게차를 운전해 화물차에서 기계를 한 대씩 내리고, 다른 A 사 직원들과 임 씨 일행은 곁에서 작업을 지켜봤습니다. 사고는 세 번째 기계를 내릴 때 났습니다. 지게차 포크(다리) 위에 얹은 기계가 중심을 잃고 임 씨 쪽으로 쓰러진 겁니다.
일을 도우러 동행했다가 사고를 목격한 임 씨의 지인은 당시 지게차 상태가 불안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불안했던 건 지게차의 덧발이 있는데, 지게차 다리 길이가 짧으면 덧발을 지게차 다리에 끼워 길게 만듭니다. 저희도 덧발을 끼워 작업하는 중이었습니다. 처음 실외기를 하차할 때부터 한쪽이 고정이 안 돼 자꾸 빠졌는데, 덧발을 고정시키지 않고 세 번째 기계를 하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게차 덧발 한쪽은 고정이 안 돼, 다리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상태가 됐던 거죠. 이때 지게차 기사가 지게차를 움직이지 않았으면 괜찮은데…" (임 씨 지인의 진술서)
임 씨가 작업 중인 지게차에 가까이 다가간 건 하차 작업을 도우려던 거라고도 했습니다.
"기계에는 바퀴가 달려 있는데 차량에 상차할 때에는 움직이지 않게 바퀴를 고정시키고, 내릴 땐 하차하기 바로 직전 바퀴를 풀어 하차 완료 후 기계를 밀고 당길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저는 화물차 뒤쪽 모서리 부분에서 기계가 나오는 걸 봐주려고 서 있었습니다. 화물차 밖으로 나온 기계의 바퀴를 임 대표가 풀고 있길래 저도 기계 나오는 쪽으로 가서 바퀴를 풀어야겠다 싶어 임 대표 반대 방향으로 갔는데, 기계가 기우뚱하면서 임 대표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임 씨 지인의 진술서)
800kg짜리 기계에 깔린 임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의식을 놓지 않은, 그 잠깐의 순간에 가족을 걱정한 게 임 씨의 마지막 말이 됐습니다. 남은 가족은 슬플 겨를도 없이 경찰 조사와 장례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A 사는 모든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A 사 대표는 '무조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남편이 A 사 직원에게 부탁해서 작업을 한 거'라고 진술했어요. 말도 안 되잖아요. 상식적으로 남편이 '제가 오늘 기계를 들여와서 작업하겠습니다' 한다고 A사 직원들이 '그럼 그렇게 하세요' 하진 않잖아요. 게다가 1억 원이 넘는 기계인데 대표가 모를 수 없는 거죠." (임 씨 아내)
"A 사 대표가 저희한테 사과 한 마디도 없었어요. 장례식장에도 구겨지고 더럽혀진 돈을, 회사 봉투에 100만 원 넣어 갖고 부조금이라고 하면서 건네주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인이 된 아버지를 더 우롱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돌려줬어요." (임 씨 딸)
A 사는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에서 "임 씨가 지게차 운전 반경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임 씨는 A 사 책임자에게 알리지 않고 갑자기 물품을 운반해 와서는 정식 절차도 없이 A 사 직원에게 하역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임 씨가 직접 뒤에서 봐주면서 안전하게 작업을 지시해 주겠다고 부탁해 하역작업이 이뤄졌던 건데, 세 번째 기계를 하차하는 도중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할 임 씨가 오히려 지게차에 가까이 접근했다가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겁니다." (A 사 준비서면)
충남 아산경찰서는 지게차를 운전한 A 사 직원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 사 대표와 납품 담당 팀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했는데, 유족이 이의신청을 해 재수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지게차 운전자만 재판에 넘겨질 걸로 보입니다.
취재진은 현직 지게차 기사들에게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들은 "지게차 포크에 끼운 덧발이 빠지지 않도록 고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자꾸 빠지는 걸로 보인다", "포크 위에 기계를 싣는 순간 한쪽 덧발이 빠지면서 기계가 기우뚱 넘어간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지게차 작업이 위험한 데도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결국 모든 건 작업 시간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게차를 운전한 A 사 직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론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격증을 가진 능숙한 사람만 지게차를 몰 수 있게 하고, 이를 보조하는 신호수를 반드시 배치하고, 절차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울 때, 또 다른 임 씨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