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 : 2019.10.29 15:05
| 수정 : 2019.10.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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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부산·마산에 발포명령 내리겠다” 잊혀가는 이 사건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부산 마산 시민들 그냥 탱크로 싹 다 밀어버리면 됩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확인된 것만 무려 1,500여명이 연행되고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잊혀간 부산의 이 사건.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1979년 10월 16일, 부산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부산대의 한 학생이 강의실에서 선언문을 나눠주며 학생들에게 거리로 나가 독재와 맞서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유신 체제 아래에서는 대통령도 직접 뽑지 못하고 학교에도 사복 경찰들이 상주해 저희끼리 이야기하는 것도 기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을 욕했다고 바로 잡혀가 징역 3년을 살기도 했습니다.” - 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와 열악한 노동 문제로 쌓였던 대학생들의 분노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에 직장인과 고등학생을 비롯한 부산의 시민들이 합류했고 시위는 가까운 마산으로도 번졌습니다. 바로 10.16 ‘부마민주항쟁’입니다.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10월 18일 0시 비상계엄 선포 그러나 계엄군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총 개머리판으로 시민들 머리를 찍고 구타하고 그냥 막 잡아가서 가두고 저는 심지어 ‘아버지가 간첩 아니냐’며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도 당했습니다.” - 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시위를 목격한 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은 민심을 파악해야 한다며 온건 대응을 제안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은 강경 대응을 밀어 부쳤습니다.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그동안 권력 다툼으로 계속해서 갈등을 겪은 김재규와 차지철은 부마항쟁 진압을 놓고도 대립했고 결국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이들의 권력 다툼, 부마민주항쟁, 10.26 사태 등은 취재기 형태의 책 ‘남산의 부장들’로 기록 됐고 곧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발포 허용하겠다" 부산 시민들도 잘 몰랐던 '그 날'
“결국 우리 삶의 방식의 문제예요. 한 사람의 독재를 위해 우리들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으로서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살 것인가. 부마항쟁은 불의에 저항한 굉장히 중요한 정신적 가치입니다.” - 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40년이 지나서야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