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 : 2016.09.28 08:08
| 수정 : 2017.02.06 17:23
뉴스에는 위아래가 없다 - 스브스뉴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1991년 8월 어느 날, 일본의 한 10년 차 기자가 취재차 한국에 왔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붙잡혀서 끌려가면 당하면서도 어찌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프고... 말이 안 나와요.” - 故 김학순 할머니 17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1991년 8월 11일, 일본 아사히 신문의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됐습니다. 기자의 이름은 우에무라 다카시.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인 故 김학순 할머니는 3일 뒤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한국보다 먼저 보도한 이 기사의 파급력은 대단했습니다. 이후 피해자 200여 명의 증언이 잇따랐고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를 조작해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킨 날조 기자” 하지만 보도 이후 우에무라 기자는 일본 극우 세력에 의해 ‘날조 기자’, ‘매국노’로 내몰렸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날조 기사를 쓴 아사히 신문의 전 기자가 대학교수가 된다.” - 2014. 2. 6. 주간문춘 그리고 2015년 1월, 퇴직한 우에무라 기자는 교수 임용이 예정돼 있던 대학교에서도 임용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우에무라 씨 임용에 대한 비난 전화와 편지가 쇄도하자 대학 측이 임용을 취소한 것입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우에무라 씨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바로 어린 딸이 협박을 받았을 때입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딸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각종 인신공격이 몰아쳤습니다. 딸은 ‘왕따를 당하길 바란다’, ‘자살하라’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기사를 썼을 겁니다.” - 우에무라 다카시 20년이 넘도록 온갖 협박과 불이익에 고통받은 우에무라 씨.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 우에무라 다카시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그는 올 초부터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와 강의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기록하고 젊은 세대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사이비 기자가 아닙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할 일은 소녀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일본인의 마음속에 소녀상이 새겨지도록 힘을 쏟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