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걸크러쉬 파일럿 권기옥

출고 : 2017.04.19 20:13 | 수정 : 2017.04.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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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걸크러쉬 파일럿 권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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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걸크러쉬 파일럿 권기옥

"미인으로 유명하여 지나 군인의 간담을 울렁이게 하던..." - 매일신보 1926년 5월 21일자 일제의 만행에 신음하던 1926년. 당시 주요 일간지엔 한 미모의 조선여성이 대대적으로 소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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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인 이영무 비행사와 함께..." - 동아일보 1926년 5월 21일자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중국군을 설레게 하는 이 조선 미녀는 조선인 이영무의 연인이라고 신문들은 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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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의 미모와 연인관계에만 주목한 이 기사, 하지만 오보였습니다. 권기옥은 이영무와 연인이 아니었고 결혼도 다른 사람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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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에선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래 전부터 조선총독부를 폭파 하겠다고 결심한 항일 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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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는 공부를 하여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 국가보훈처 자료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권기옥 열사는 17살 때 우연히 곡예비행을 보고 비 행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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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이던 1919년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당시 권기옥 수사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 여자는 지독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으니 검찰에서 단단히 다루길 바란다" - 권기옥 취조 심문조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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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그녀는 1920년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해 비 행사 양성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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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의 항공학교들은 여자란 이유로 권기옥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임시정부의 추천서를 받은 그녀는 여러 차례 지원한 끝에 1923년 운남항공학 교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입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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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를 폭파할테니 비행기를 구해주세요." "비행기를 살 돈은커녕 빌릴 돈도 없다네. 미안하네." 1925년 조선 여성 최초로 비행사 자격증을 획득한 권기옥은 조선총독부를 폭 파하기 위한 계획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상해임시정부는 비행기를 마련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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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중국 역시 일제의 침략을 받는 상황. 그래서 권기옥은 베이징의 중국 항공대에 들어가 정찰 임무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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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상하이전쟁이 일어나자 그녀는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본 적진을 향해 폭격하며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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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권기옥은 조선인 비행사들과 함께 국내 공격을 준비했지만 1945년 일본 이 항복하면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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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하지만 그녀는 이 수식어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비행기를 탄 것은 조선 최초란 '타이틀'이 아니라 조국 광복을 위해서였 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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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오늘(4월 19일)은 권기옥 열사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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