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육시랄 역사'

출고 : 2017.01.16 19:09 | 수정 : 2017.02.01 14:41
뉴스에는 위아래가 없다 -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이놈의 육시랄 역사'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일제 치하의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당황한 일본 경찰은 용의자가 잡히지 않자 마구잡이로 의심되는 인물들을 연행했고, 한 청년이 2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는데….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수감번호 264’ 이때부터 ‘이육사’로 불리기 시작한 이 청년. <절정>, <광야> 등의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바로 그 민족 저항 시인이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이놈의 육시랄 역사’ 민족 저항시를 쓸 때 그가 쓴 필명 ‘이육사’의 한자는 놀랍게도 ‘죽일 육(戮)’자와 ‘역사 사(史)’자였다. ‘이 비통한 역사를 죽이겠다’는 뜻으로, 역사를 빼앗긴 비통한 심정의 발로였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절정」(1940)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나에게는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그는 17번의 옥살이 와중에도 40여 편의 시를 쓰고, 항일 무장투쟁 용사를 배출하는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를 1기로 졸업한 뒤 만주를 누비며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그리고 1943년, 비밀공작원 활동 도중 일제에 적발돼 체포됐다. 마지막 면회에서 그는 딸의 볼을 자신의 얼굴에 댄 채 말한다. “아빠 갔다 오마.”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불과 1년 앞둔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39년 8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이름까지 버려가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다간 투사 이육사.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하지만 그가 죽이고자 했던 ‘이 육시랄 놈의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

#스브스뉴스

'이놈의 육시랄 역사'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73년 전 오늘은 ‘행동하는 양심’, 이육사가 차디찬 형장에서 이슬이 된 날이다.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