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 : 2016.09.30 22:27
| 수정 : 2017.02.06 17:04
뉴스에는 위아래가 없다 - 스브스뉴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미국이 숨겼던 72시간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년 뒤 7월의 더운 여름 날 충북 영동 한 마을에 살던 10살 소년 해찬이는 처음으로 미국인을 만납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대피시켜주겠다" 미군의 말에 해찬이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4남매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미군을 따라갔습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갑자기 미군이 피난 행렬을 막아섰습니다. 짐 검사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그 순간, 하늘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더니 피난 행렬을 향해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해찬이는 그날 할머니, 아버지, 동생의 마지막 순간을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간신히 살아남은 해찬이는 헐레벌떡 쌍굴다리 밑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러자 이내 쌍굴을 향한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어둠 속에 널부러진 시신과 생존자가 뒤엉켜 누워있는 쌍굴 안은 지옥보다 참혹했습니다. 총을 쏜 군인들을 본 주민들은 경악했습니다. "미군이다. 미군이 우릴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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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굴 안 어둠 속으로 사흘간 총격이 쏟아졌습니다. 그 사이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젖을 먹이느라 몸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는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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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미군이 총격을 가하자 아버지는 울면서 아기를 죽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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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찬이는 그렇게 3일을 버티고 미군 눈을 피해 간신히 대피했습니다. 충북 영동군의 민간인 200명 이상이 미군에 의해 살해된 이 사건의 이름은 노근리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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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46년이 지나도록 미국은 이 사실을 쉬쉬했습니다. 어른이 된 양해찬 씨는 가족들과 이웃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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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유족회는 노근리 실화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했지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미 정부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진정도 냈지만 기각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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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7년 전인 1999년의 오늘(9월 30일). AP통신이 처음으로 노근리 학살 사건에 대해 보도했고 마침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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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은 그들 속에 북한 인민군이 숨어있다는 이유 때문.” - AP 통신 1991년 9월 30일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Kill them all." 이 한 마디 명령으로 수 백명의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 없이 무참히 살해돼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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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의 배상을 거부했어. 그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든." -양해찬 유족회장 AP통신 보도가 나가자 미국정부는 그제서야 배상을 하겠다고 접촉해왔습니다. 하지만 논의 끝에 노근리 유족회는 미국의 배상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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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추모비석을 세워주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준다는 소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사과와 배상의 진정성이 없다고 본 생존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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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고... 이제 생존자들도 정말 얼마 없어..." 생존자들은 최소한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회한과 트라우마로 살다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Kill them all"…미국이 숨겼던 72시간
17년 전 오늘 세상에 처음 알려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