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경기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광주일고와 배재고가 맞붙었습니다. 경기가 한참 뜨거워지는 가운데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이런 응원 구호가 흘러나왔습니다.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이어서 나온 외침은 "탱크데이". 명백하게 지난달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과 폄하 논란을 불렀던 스타벅스 코리아의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활용한 구호입니다. 스타벅스는 당시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홍보물을 게시해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적절한 문구를 가져다 광주 지역 고교팀을 상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도대체, 왜?'였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이 황당한 홍보행사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대표가 교체됐습니다. 정용진 그룹 회장까지 머리를 숙이며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한동안 불매운동이 진행되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봤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뭇매를 맞은 문구를 어린 고교생들이 무슨 생각으로 갖다 썼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까?
사회학자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20대 청년에게도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들의 해석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극우 보수화된 이른바 '애국소년'이 현실 세계에 스며들고 있음을 돌출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요. "온라인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혐오 문화가 오프라인, 그것도 가장 공정하고 교육적이어야 할 고교 스포츠 현장에까지 전염됐다는 증거"라고요. 그 세대에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하나 역사 왜곡은 심각한 이념의 발로가 아니라, 상대방을 타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 도구, 즉 치트키'일 뿐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심리적 배경을 다음의 4가지로 분석했습니다.
① 역사적 비극을 '밈'으로 유희화
가장 핵심적 심리는 '도덕적 해이와 유희화'입니다. 이들에게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태는 역사적 상처나 인권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재미있는 논란', 즉 '밈'에 불과했습니다. 엄중한 일탈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광주)이 가장 긁힐 만한 강력한 키워드 소스"로 가볍게 소비한 것입니다. 비극을 맥락 없이 희화화하는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해 역사적 죄책감이나 공감 능력이 마비된 채 '조롱의 재미'만 추구합니다.
② 익명성 뒤에 숨어 '집단적 동조'
더그아웃이라는 공간은 선수들에게 일종의 보호막이자 익명의 공간입니다. 개인으로서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반사회적 혐오 발언도, "팀 동료들과 함께 외치고 춤추는" 순간 집단적 용납을 획득합니다. "함께 장난스럽게 응원 구호 부른 건데 뭐가 문제냐"며 책임을 나누면서, 최소한의 윤리적 제어장치마저 마비시킨 것입니다.
③ 냉소주의적 우월감과 'PC주의'에 대한 반발'
최근 젊은 층 우경화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가 엄숙하게 지키는 사회적 금기를 깨부술 때 오는 쾌감'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인권, 민주주의, 지역 화합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위선'이나 '지루한 PC주의'로 치부합니다. 이를 조롱함으로써 자신들이 더 "솔직하고 유연하다"는 식의 왜곡된 우월감을 느끼는 심리입니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역린을 건드리며 짜릿함을 느끼는 일종의 트롤링(인터넷 도발 행위) 심리가 기저에 있습니다.
④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 지상주의'
고교 야구 선수들에게 대회 성적은 프로 드래프트와 대학 진학이 걸린 생존 문제입니다. 치열한 경쟁 압박 속에 "상대 심리를 흔들어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언어적 무기를 써도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결과주의가 발현된 것입니다. '공정'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경쟁 상대를 향해서는 가장 불공정하고 저열한 혐오의 칼날을 겨누는 모순적 심리입니다.
우리는 스타벅스 사태가 '정용진 회장의 사과, 대표 해임'으로 일단락됐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하위 문화에서는 그 사건을 '광주를 조롱하는 새로운 언어 템플릿'으로 재해석해 유통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 세대의 역사 교육 부재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온라인 공간의 혐오 문법이 현실 세계의 일반 문법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징후입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10대와 20대 남성층의 극우화 경향은 이미 여러 사례(선거, 여론조사)와 연구로 실증됐습니다. 문제는 일부에 국한됐던 이들의 문화가 주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학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무조건적 '극우화'라기보다 젠더 갈등과 공정성 담론에 기반한 '선별적·기능적 보수화'로 해석합니다. 청년들이 처한 생존 환경과 가치관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① '결핍의 세대'가 느끼는 치열한 생존 경쟁과 불안감
지금의 1020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가난해지거나 좋은 일자리를 얻는데 실패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진 첫 세대입니다. 고성장 시대의 수혜를 입는 대신 턱없이 높아진 고용과 부동산 시장의 문턱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만성적 불안감이 타인에 대한 포용력, 연대의 가치를 낮춥니다. 각자도생의 심리를 강화합니다.
② '기계적 공정성' 담론과 역차별 인식
문재인 정부 시절 적극적으로 추진됐던 성평등과 여성 할당제 등 소수자 우대 정책에 대해 젊은 남성들의 반감은 매우 컸습니다. "기성세대 남성들이 누린 혜택의 대가를 왜 아무 권력도 없는 우리가 치러야 하느냐"며 강한 박탈감을 호소했습니다. "군 의무 복무에 대한 보상은 없는 반면, 여성이나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자신들에 대한 '역차별'이자 불공정"이라고 주장합니다.
③ 뉴미디어 플랫폼의 에코챔버 효과
젊은 층이 정보를 소비하는 주 통로가 유튜브,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등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로 재편됐습니다. 자극적인 反페미니즘, 외국인 혐오, 진보 정치인 조롱 콘텐츠가 조회수를 모으기 쉽다 보니 대량 생산됩니다. 젊은 남성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편향된 생각이 '사회 전체의 상식'인 것처럼 믿게 되는 에코챔버 효과에 갇히게 됐습니다.
④ 정치권의 '젠더 갈등 갈라치기' 전략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청년 남성들의 이런 분노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나 "할당제 폐지" 같은 직관적 슬로건으로 이들의 분노에 '정치적 효능감'을 부여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을 보수 정당의 강력한 핵심 지지층으로 묶어 두게 됐습니다.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는 과거 냉전 시대식 '반공 보수'가 아닙니다. "내 몫을 지키기도 힘든 치열한 세상에서 기계적 공정마저 깨뜨리는 페미니즘, PC주의, 진보 정치권 등에 반대한다"는 철저한 생존형 실리주의적 성격이 강합니다. 이 과정에서 혐오 정서나 극단적 조롱 문화가 필터링 없이 수용되는 부작용을 수반하는 상황입니다. 인권, 연대, 관용 등 과거 세대 가치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극우의 문화, 문법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젊은 남성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내용도 많습니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불만과 불안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사회의 건강성을 좀먹는 병리적 부작용은 막고 치료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병폐가 점차 체질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번 고질화 되고 나면 되돌리는 것은 극한 난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치 공학적 접근만 하고 있는 정치권부터 하루빨리 정신 차려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