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대표단들이 마주 앉았습니다.
남북 핵시설 사찰 규정 협상을 앞둔 상황인데 시작도 하기 전, 신경전이 오갑니다.
[공로명/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남측 대표 : 칼이라는 게 잘 쓰이면 유용하게 쓰이고 잘못 쓰이면 손 벤단 말이야. 마찬가지로.]
[최우진/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북측 대표 : 공 선생 말씀하신 것을 듣게 되면 핵무기를 앞으로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는.]
당시는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미국이 남한 내 전술핵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한국 정부도 핵무기 부재 선언을 한 시점이었습니다.
통일부가 오늘(30일) 공개한 회담 문서 3천 8백여 쪽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남북이 32차례 치열하게 핵문제를 협의한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습니다.
북한은 영변에 재처리 시설을 짓고 있단 의혹은 부인하면서 오히려 주한미군 기지의 핵 사찰을 압박했습니다.
92년 10월, 북측 대표단은 남측에 "미국의 핵무기, 핵기지가 있단 사실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며 "사찰을 회피"하지 말고 성실히 받으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같은해 5월 회담에선 영변 시설에 대해 "자그마한 시험로"가 "간단하게 있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의 모르쇠 전략에 남측 대표단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임동원 당시 남측 대표는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협상을 하는 놈"이라고 맞받았고, 책상을 내려친 모습도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북측은 지금과는 달리 거의 모든 회담에서 통일과 민족을 언급했고, 우리측 의혹 제기엔 미국의 소리를 그대로 옮기느냐며 비아냥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0여 년 전 남북 간 최초로 진행된 핵협상에서 양측은 사찰 규정에 대해 내내 평행선을 달렸고, 끝내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박용한/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회담문서 공개 심의) : 북한은 당시에 주한 미군에 배치됐던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됐는지에 논의의 초점을 뒀었고 (북한 비핵화 문제는) IAEA와 대화를 하고 한국은 협상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컸다고 봅니다.)]
이번에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북한자료센터 등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취재 : 김아영, 영상편집 : 최혜영,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