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0선을 돌파하며 축제를 벌이던 코스피가 어제 하루 만에 1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오늘도 개미들이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이전처럼 V자 반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주식 시장을 떠받쳐온 개미마저 체력이 다한 것 아니냐 우려가 나옵니다. 어제의 증시 급락 사태는 한국 증시 역사에 남을 충격입니다. 코스피 하락률은 9.99%로 역대 5번째로 컸고, 장중 고가와 저가 차이도 971.61포인트로 역대 최대 일간 등락폭을 새로 썼습니다. 기록적 폭락의 원인으로 여러 악재가 거론됩니다. 여기에 수급적 쏠림의 한계가 더해지면서 악재들 간에 이른바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① 반도체 쏠림 현상의 부작용과 차익 실현 투매
최근 코스피가 9,100을 돌파하는 과정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톱이 이끈 독주 체제였습니다. 이것이 부메랑이 됐습니다. 뉴욕 증시에서 AI 관련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 소식이 불안을 부추겼습니다. "과연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날까?" 이런 의구심이 퍼지며 뉴욕증시의 기술주들이 급락했고 우리 증시의 쌍두
마차에 타격을 가했습니다. 외국인들이 반도체 대형주 중심으로 투매물량을 쏟아냈습니다.
② SK하이닉스 ADR 상장 심사 지연 악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심사 결과가 또 지연된다는 소식도 악재였습니다. 글로벌 자금 유입의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이벤트가 불투명해지자, 실망한 글로벌 패시브 자금과 헤지펀드들이 빠르게 자금을 뺐습니다.
③ 원화 약세(환율 급등)와 환차손 공포
미-이란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되자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폭등했습니다. 가뜩이나 달러 회귀 분위기가 커지던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뛰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환차손'까지 두드려 맞는 공포에 직면했습니다.
④ 프로그램 매매의 기계적 투매 폭주
MSCI 지수 편입 불발과 호르무즈 불안 상황이 겹치면서 국내 증시의 고질적 약점인 대형주 중심의 선물·옵션 연계 프로그램 매매가 하방 압력을 극대화했습니다. 결국 지수가 특정 지지선마저 깨고 내려가자 기계적 손절매 물량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요? 비슷한 상황을 맞은 다른 아시아 증시들은 대부분 2~3%대 하락에 그쳤습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 새로운 상황이 생긴 것도 아닌데 국내 시총만 하루 만에 700조 넘게 증발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증시의 변동성이 커졌고 작은 충격에도 취약해졌다는 뜻입니다. 그 주범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한달 전 출시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입니다. 이 ETF는 상장 이후 극단적인 거래 쏠림과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보여주며 우리 증시의 괴물로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① 자금 빨아들이는 '블랙홀'
5월 말 상장 초기 16개 종목의 총 순자산은 각각 약 2,000억 원~3,000억 원 수준으로 비교적 소규모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현재 16종 전체 시가총액은 22일 기준 12조 3000억 원으로 상장 때 보다 약 3배 커졌습니다. 자금 유입 속도가 기존 지수형 ETF의 상장 초기 기록을 압도합니다.
② 거래대금 쏠림 현상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이후 누적 거래대금은 약 142조 7,000억 원에 달하며, 하루 평균 8조 4,000억 원이 이 시장에서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ETF 거래대금 약 622조 원의 무려 23%를 차지합니다. 국내 주식시장 전체 ETF 거래의 4분의 1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16개 상품이 독식하는 극심한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③ '토네이도급' 일평균 매매회전율
최근 금융감독원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일평균 매매회전율이 6월 12일까지 평균 122.5%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1% 미만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현물 주식 회전율은 물론 국내 주식형 레버리지·인버스 ETF의 평균 회전율 30.2%를 4배 넘게 웃돕니다. 심한 경우 회전율이 200%에 육박했습니다. 하루 동안 ETF 총 주식 수가 두 번이나 통째로 손이 바뀔 만큼 극단적인 단타 매매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불쑥 자라버린 괴물은 어제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급락장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단순히 기초자산의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하락을 가속화하는 '하방 압력 변동성 증폭기'가 된 것입니다.
① LP(유동성공급자)의 헤지 매도 폭탄 유발
레버리지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와 LP들은 투자자들에게 2배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기초자산 주식이나 관련 파생상품(선물 등)을 보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가가 급락하면 LP들은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할 레버리지 부채 비율을 맞추기 위해 기초자산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주식, 선물을 시장에 강제로 팔아야 합니다. 어제 장중 지수가 무너지며 두 종목의 주가가 급락하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자산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그램 헤지 매도 물량을 쏟아냈습니다. 이는 두 대형주의 낙폭을 키웠고, 다시 코스피 지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는 악순환을 만들었습니다.
② 일일 리밸런싱에 따른 장마감 직전 폭탄 매도
레버리지 ETF는 '일일 수익률의 2배'를 맞추기 위해 매일 장마감 시점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이를 리밸런싱이라 합니다. 어제처럼 장중 내내 주가가 폭락한 날에는 장마감 직전 배수를 맞추기 위해 기초자산 선물을 추가로 대거 매도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집니다. 실제 어제 장 후반 동시호가 주변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비정상적인 매도세의 상당 부분이 이 레버리지 ETF들의 기계적 리밸런싱 매도였음이 확인됩니다.
③ 공포지수의 폭발적 상승 유도
기초자산 두 종목이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워낙 절대적이다 보니, 두 종목의 레버리지 상품에서 유발된 변동성은 시장 전체로 전염됐습니다. 어제 장중 한국형 공포지수인 코스피200 변동성지수가 90선에 육박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유발한 대형주 변동성 폭발이 전체 투자 심리를 마비시켰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최근 도입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라는 괴물 같은 파생상품이 어제 폭락장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 현상을 극대화한 핵심 주범이라는 분석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미 이런 상황을 내다보고 기막힌 시점에 반성문을 냈습니다. 증시 급락 하루 전인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드러누워서라도 상품 출시를 막았어야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원래 금융위원회가 이 상품을 급하게 허용한 명분은 "미국 증시로 떠나는 국내 투기 수요를 국내로 돌려 고환율을 방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반이 취약한 국내 증시에 초대형 기관총을 쥐여준 꼴이 됐습니다. 미국 증시는 시가총액이 워낙 커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본주를 흔들기 어렵지만,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 비중이 코스피 전체의 절반 가깝습니다. 두 종목의 2배 레버리지에 투기 자금이 몰리면서 이 상품의 발작만으로 코스피 전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찬진 원장의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 "증권사 수수료 배만 불렸다"는 발언은 역설적으로 정부 정책의 엇박자와 사전 위험 통제 실패를 자인한 꼴입니다. 상품 출시를 밀어붙인 금융위원회와 현장의 변동성 폭발을 경고하지 못한 채 '사후 경고'나 날린 금융감독원의 불협화음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당국이 안전장치 없이 고위험 상품을 열어준 결과 우리 증시의 '널뛰기'는 관리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오늘 부랴부랴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국내 10개 주요 증권사 리스크 담당 임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형식적인 한도 관리에 그치지 말고, 시장 상황과 투자자 보호 필요성을 반영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투자자가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미수거래가 발생하거나, 미수거래를 사실상 유도하는 영업 관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대매매 발생 요건과 손실 가능 범위도 투자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약관과 설명서에 대한 설명의무 이행도 강화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사본축말(捨本逐末)이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입니다. 앞으로 금융당국은 몸통을 흔드는 꼬리를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두고두고 고민하게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