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파트 두 채 값 들여 키운 애를"
얼마 전 김해 한 중학교 체육 교사에게 학생 가족들이 쏟아낸 발언들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6월 체육시간을 마치면서 스쿼트 운동을 했단 건데 한 남학생 할머니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강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학생 할머니 : 우리 OO를 학교 운동장에다가 이 폭염 속에 애를 세워 놓고…우리 애가 소양인 체질이라 물을 잘 안 마셔요. 원어민 영어고 골프고 다 시켜서 돈을 아파트 두 채 값을 넘게 들여 그렇게 키운 애를 갖다가. 선생님이 호락호락하게 아무렇게나 대할 애가 아니에요.]
학부모는 투명 의자, 즉 기마 자세를 시킨 거다, 귀를 잡고 쭉 끌고 갔다 등 여러 주장을 하면서 선생님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A 씨 / 체육 교사 : 아침 1교시 수업은 8시 45분부터 시작되어서 전혀 폭염주의보도 아니었는데, 다 같이 예정되어 있던 정리 운동 스쿼트 수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땡볕에 투명 의자를 시켜서 신체적인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부분이 가장 황당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분노에 찬 이런 말이나 말도 안 되는 이런 말들을 제가 들어야 하나.]
경찰은 수사 끝에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는데요. 문제는 아동학대처벌법상 혐의가 없어도 무조건 검찰로 사건을 넘기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송치된 사건을 검찰도 들여다봤는데 역시 무혐의로 결론 냈습니다. 학부모는 여기에도 불복해 항고했는데 고등검찰청도 무혐의가 맞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자, 이번엔 재정신청까지 내며 법원의 판단을 구했지만, 법원 역시 무혐의로 결론 내렸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걸 증명하는 게 더 어렵다는 악마의 증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은 무혐의를 확정하는 데 경찰,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법원까지 거치면서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정신적 고통에 치료를 받아야 했고, 또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건 어렵겠지만 경찰 조사 진행 중 상세불명의 통증과 함께 유산까지 했습니다.
2. 교사에겐 총도 방패도 없다
죄가 없으면 떳떳하게 맞서면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전을 감당하는 건 결국 교사 개인의 몫입니다.
[A 씨 / 체육 교사 : 교육청에서 뭐 변호사가 있다. 3일 내에 빨리 써야 하는데 전담 변호사와 통화를 그때 하지 못했거든요. 알고 보니까 경남 전체에 자문 변호사가 한 분 계신다고 했어요. 그럼 당연히 연결도 어렵고. 그래서 허울 뿐인 어떤 제도들을 만들어 놓고…너무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원과 소송이 시작되면 동료 선생님, 학생들까지 위축되면서 교육 현장이 흔들리는 건 불가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민원이나 소송에 엮이지 말자, 열심히 가르치지 말자, 이런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어른 싸움에 결국 피해는 아이들의 몫인 겁니다.
[김지성 / 전국교원노동조합 경남지부장 : 선생님들의 불안함은 익히 알고 계실 것 같고, 그것은 최고조에 있고요. 항상 본인들의 어떤 지도나 말 행동 모든 것들을 스스로 검열하죠. 선생님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회피하는 전략밖에 저는 없을 것 같아요. 현재. 아니면 내가 엄청 곤란함을 겪어서 힘들게 힘들게 사법의 어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학교로 돌아오시거나 해야 되는데 그 과정을 굳이 내가 해야 되는가…]
[A 씨 / 체육 교사 : 저를 일단 고소 해두고 다른 교사들도 압박하고 교육청에도 쉽게 민원을 넣으시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떤 본보기가 된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되려 괜히 열심히 수업을 했다 이런 자책도 하기도 하고.]
3. 교권보호국 만들면 해결될까?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의 영향인지, 안민석 경기도 교육감 당선자는 "교육청에 '교권 보호국'을 설치하자", "특전사 출신 교사를 투입하자" 이런 말을 했는데요. 이미 교육청에는 '교권보호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 사건 관련해 내린 조치 결정문을 입수해 살펴봤는데요, 학부모의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빼곡하게 적혀있었습니다. 학생 아버지는 학교 측에 전화해 "우리 애를 8번 힐끔거렸다더라", "당장 전화 바꾸지 않으면 찾아가겠다" 이런 말을 했고요. 국회의원실에 민원을 제기해 선생님은 저녁에 답변서 작성 요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학생 어머니는 학교 측에 체육 선생님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학생을 살해한 명재완 교사 사건까지 언급했다네요, 그러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두렵다" 그런 이야기를 학교에 전달했습니다. 온갖 서류를 달라고 정보공개를 요청하거나 학교 선생님들과 통화하고 면담하면서 문제제기를 이어갔습니다.
[A 씨 / 체육 교사 : 저한테 직접적으로 민원은 넣지 않았지만 결국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전해 달라. 교감 선생님께 전하거나 교장실에 들어오거나 이런 식으로 해서 학교 전체가 계속해서 대응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성적 관련된 민원이 있었을 때도 전화하셔서 5분 내로 해당 교사를 바꾸지 않으면 학교에 찾아가겠다 하면 이제 그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다 같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회의를 해야 되고.]
보통 민원이나 소송이 시작된 학교에서는 전체적으로 휴직이나 전근 신청, 퇴직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하는데요, 어차피 방패도 없이 싸워야 하는 전투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단 겁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내린 조치를 보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이 사건 학부모에게 내린 조치가 각각 특수교육 5시간, 4시간을 받으란 겁니다. 이게 교권보호위원회가 할 수 있는 최고 수위 조치입니다. 그런데 이조차 강제력이 없어 학부모들 수업 안 받습니다. 안 지키고 최대 300만 원 과태료 내면 되거든요. 게다가 학생 학부모는 교권보호위원회 상대로도 특별교육 결정을 취소하라며 행정쟁송을 진행 중입니다. 학부모는 또 체육 선생님을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재고소하면서, 교육청 회의에 출석해 발언한 언행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는데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괜히 교권보호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소송만 더 당하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미 있는 교권보호위원회도 이런 상황인데, 교권보호국 새로 만든다, 기대가 될까요?
[A 씨 / 체육 교사 : 교권보호위원회 그때 당시에 이제 해당 지도를 따르지 않았던 학생과 학부모 2명 각각 총 3명한테 신청을 했는데 부모는 둘 다 특별 교육에 나왔지만 학생은 교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이 나왔다는 이유로 이제 무고 혐의로 고소를 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나 나온 결정에 따라서 다시 교사가 형사 고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노출이 된다면 어떤 교사도 교권보호위원회에 신청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4. 교육청이 보내온 답변은 SOS?
교권보호위원회가 소속된 경상남도김해교육지원청은 SBS 취재 요청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교원지위법에 따라 할 수 있는 조치가 서면사과, 재발방지 서약, 특별교육 이수 뿐이라 제한적이고 실효성과 구속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무혐의 처분 결정 이후에도 동일하고 유사한 민원이나 신고가 반복될 경우 교육활동 위축과 학교 현장의 행정력 소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복적, 악성 민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응과 신속한 교원보호 체계 마련에 대한 현장의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5. 다시 참교육
교권 붕괴, 대책은 있을까요? 교원단체들은 교육활동 관련 소송 국가책임제 도입과 모호한 정서적 아동학대 관련 법 조항 개정을 요구합니다.
[ 김지성 / 전국교원노동조합 경남지부장 : 아동학대라는 이 범주 속에 정서적 학대나 방임 같은 경우에는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합니다. 결국 사법 기관으로까지 가지고 가서 그 판단을 받아야 되는 그런 상황 속에 놓여 있고, 많은 교사들이 그 긴 기간 동안에 그것을 견디는 것도 매우 힘들고. 학교라는 곳이 원래는 교육을 해야 되는 곳인데 그 교육을 포기하는 이런 사태가 발생되고 있다.]
또 경찰이 모든 아동학대 사건을 검찰에 보내도록 한 규정을 없애 경미하거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은 신속히 종결하도록 하고, 반복적인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학교가 대응할 수단이 필요하단 입장입니다. 나아가 전교조는 정서적 학대나 방임은 교육 당국이 판단하도록 하자, 교총에서는 중대 교권침해는 학생부에 기재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담긴 실효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교권 붕괴 현상을 되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A 씨 / 체육 교사 : 정말 어릴 때부터 꿈을 가지고 이렇게 교단에 왔는데. 특히 처음 맡았던 제자들이 유난히 사범대, 교대에 많이 가서 지금도 연락이 많이 오고 있는데 제가 겪고 있는 상황을 차마 말을 못 했어요. 이 아이들도 똑같이 이런 일을 겪을까 봐.]
(취재 : 정반석,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김상윤, 영상편집 : 홍진영, 디자인 : 이수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