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70년 넘게 만학도들의 배움의 터전이 돼준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습니다. 현행법상 평생교육시설은 설립자가 사망하면 운영권을 승계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학교가 없어지게 된 학생들은 당국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희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평균 나이 69살, 만학도들의 배움터인 서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매일 낮 2시면 늦깎이 학생들의 오후반 수업이 시작됩니다.
[Do you have breakfast? 아침 먹었어?]
새벽 건물 청소를 마치고 온 미화원도, 손주 돌보는 할머니도 이 순간만큼은 배움의 기쁨에 몰입한 학생들입니다.
[고연희/일성여고 2학년, 65세 :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낮았던 자존감이 회복돼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1953년 야학으로 출발한 일성여고는 지난 74년간 6만 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국내 최초의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입니다.
전쟁과 가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이들에게 이 교실은 한을 푸는 공간입니다.
[홍명수/일성여중 2학년, 64세 : 위에는 오빠고 밑에는 남동생. 옛날분들은 오빠나 아들을 가르쳤잖아요. 아이 셋을 어떻게든 4년제를 보내자. 다 출가를 시켰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을 했는데 공부였어요.]
지난달 설립자인 이선재 교장이 별세하면서 이 학교는 2028년 2월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현행법상 개인이 설립한 평생교육시설은 설립자가 사망하면 운영권을 승계할 수 없고 학교를 유지하려면 유족이 공익재단법인을 설립해야 하지만, 상당한 규모의 재정 마련과 인허가 절차가 장벽입니다.
이런 법적 한계 탓에 존폐 위기에 처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은 수도권에만 10곳입니다.
[조현분/일성여고 26년 재직 교사 :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막 초롱초롱 이렇게 눈을 반짝이시는데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교를 문 닫는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950명의 재학생과 교직원은 최근 일방적 폐교가 아닌 공익 재단 위탁 운영 등의 대안을 찾아 달라며 국민청원을 냈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공익법인법 개정을 위해 법무부와 협의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강시우, 영상편집 : 박나영, 디자인 : 서승현·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