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은 어겼지만 위법은 아니다? 선관위의 납득 어려운 해명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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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사흘째 벌어지고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침해한 사건입니다. 특히 투표소에 방문했지만 투표용지 부족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의 경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나 참정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논란이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를 추가 배부했다는 점입니다. 선관위는 6.3 지방선거 당일 최소한 14곳 이상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벌어지자, 일련번호 부분을 공란으로 두고 인쇄해 놓은 '예비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손으로 기재해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벌어진 읍·면·동 선관위에 추가 배부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의 '선거 당일 투표용지 추가 배부' 조치는 최소한 2가지 점에서 선거법 조항에 명백하게 위배됩니다.

선관위의 위법행위 ① 선거일 "전일"까지 배부해야 한다는 규정 위반 (선거법 제151조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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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담겨 있던 박스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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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투표용지는 선거일 "전일"까지 배부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151조 1항 위반입니다. 해당 조항은 선거일 "전일"(하루 전)까지 투표용지를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선거일 하루 전에 투표용지를 송부받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용지를 봉함하여 보관"하는 절차를 통해 하루 동안 투표용지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조치하였다가, 투표관리관에게 인계해야 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투표용지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따라서 선관위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투표용지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서 선거일 당일에 투표용지를 추가로 배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151조 1항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입니다.

공직선거법 제151조(투표용지와 투표함의 작성)

①투표용지와 투표함은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작성하여 선거일 전일까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하며, 이를 송부받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은 투표용지를 봉함하여 보관하였다가 투표함과 함께 투표관리관에게 인계하여야 한다.

선관위의 위법행위 ② 일련번호를 "인쇄"해야 한다는 규정 위반 (선거법 제150조 1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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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인쇄"하지 않고 손으로 기입한 행위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입니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10항은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인쇄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쇄"는 의도를 가지고 선택된 단어입니다. 1994년에 현행 (통합) 공직선거법을 만들 때, 이전까지 존재했던 4개의 개별 선거법(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법)에 존재했던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기입'해야 한다."는 조항을 "일련번호를 '인쇄'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변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법자는 명확한 의도, 즉 투표용지의 일련번호를 누군가 손글씨로 임의로 수정할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기입'이라는 단어를 '인쇄'로 변경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같은 의도를 무시하고 일련번호를 투표용지에 손으로 기입한 행위 역시 공직선거법 제150조 10항 위반이 됩니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⑩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인쇄하여야 한다.

법에는 어긋나지만 위법 행위는 아니다? 선관위의 흥미로운 해명

흥미로운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반응입니다. 중앙선관위 측은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를 (추가) 배부하는 행위가 선거법에 어긋난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인쇄하지 않고 손으로 쓴 행위 역시 선거법과 맞지 않는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위법 논란이 있다거나,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은 몰라도, 위법 행위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법을 어긴 것은 맞지만 위법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은 맞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걸까요? 선관위 설명을 좀 더 들어봤습니다.

중앙선관위 측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투표용지를 선거일 당일에 추가 배부하는 것이나, 일련번호를 손으로 쓰는 행위는 입법미비에 따른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그동안 실무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업무 관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에 불이 붙는 것과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 (일련번호가 인쇄되어 있지 않은) 예비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손으로 기재해 추가 배부하는 방식을 이용해 왔다는 겁니다. 내부 매뉴얼에 해당하는 사무 편람에도 이와 같은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도 이와 같은 대응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공직선거법은 물론 공직선거법의 하위 규칙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도 '선거일 당일 투표용지 추가 배부'나 '투표용지 일련번호 수기 작성'에 대한 근거 조항은 없습니다.

결국 중앙선관위 측 해명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1) 선거법에 어긋나는 것은 맞다

2) 그러나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내부 매뉴얼(사무 편람)을 통해 그동안 인정되어 왔던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3) 물론 업무 관행이라고 해도 법적 근거가 없고, 선거법에 어긋나는 것은 인정한다.

4) 하지만 위법 행위라는 규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선관위 해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하지만 선관위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첫째, 선관위 주장대로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 수단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선거라는 중대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선관위의 행위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이뤄져야 합니다. 선거일 당일에 투표용지를 추가 배부하거나, 일련번호를 손으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면 그와 관련된 조항을 공직선거법에 추가하거나, 적어도 공직선거법의 하위 규칙으로 중앙선관위가 제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라도 마련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선관위가 이번에 위반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불과 몇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선관위 해명에 약간의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들이 제정된 지 30년 넘게 흘렀는데도 지금까지 법에 어긋나는 관행을 반복해 왔다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선관위가 위반한 법 조항을 '강행 규정'이 아니라 '훈시 규정'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강행 규정은 국가 기관이 직무를 수행할 때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는 규정으로, 위반 시 각종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 규정을 말합니다. 훈시 규정은 원칙과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정으로 위반한다고 해도 법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규정입니다.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선거법 제151조 1항이나 제150조 10항의 경우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직접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형사처벌 규정이 없는 선거법 조항을 모두 '훈시 규정'으로 해석할 경우 선거법에 포함된 대부분의 절차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양홍석 변호사는 "위반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법에 있는 해당 조항들은 강행규정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위반한 공무원에 대한 징계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향후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국가배상 소송이나 헌법소원 심판 등이 진행될 경우 "중앙선관위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선거 사무를 진행했는지 여부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독일에서는 투표용지 규정 위반 때문에 '무효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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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투표용지에 대한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규정을 위반하여 투표용지를 배부한 경우 투표가 무효처리되고 재선거까지 실시된 경우가 있습니다. 2021년 독일 베를린에서 이번 6.3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 베를린 선거 당국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선거 관련 규정을 위반하고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를 복사해 배포했습니다. 이후 선거 무효 소송이 진행되면서 투표용지를 선거 당일에 복사해 배부한 사실의 위법성도 중요한 쟁점이 됐습니다.

2022년 11월에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을 선고하면서 투표용지를 복사해 배부한 것이 법률 위반이라며 복사된 투표용지에 기표한 표를 무효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투표용지 사본을 투표용지로 교부하는 것은 베를린 주 선거법 시행령(LWO BE) 제49조에 따른 투표용지 규격에 관한 일반 법률적 요건, 베를린 주 헌법 제39조 제1항에 따른 유권자의 보통·평등 선거권 행사 권리, 그리고 정당 간 기회균등 원칙을 침해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투표용지 제작은 선거 실시 전의 준비행위"라고 규정하여, 투표용지가 선거일 전에 준비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원칙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나아가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투표 장애는 잘못된 선거 준비로 인해 유발되었다. 따라서 이는 기상 악화로 인한 인파 집중, 응급구조대 출동 등 국가의 행위에 기인하지 않은 특별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대기 시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선거당일에 불가피하게 법을 위반한 상황과 선관위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법 위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물론 베를린 선거에서 투표가 무효 처리된 상황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선거 당일에 추가 배부된 상황이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주된 문제점 중 하나가 복사된 투표용지의 일부 내용 배치나 크기가 원본 투표용지와 달랐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선거일 당일에 추가 배부된 투표용지의 경우 일련번호를 손으로 기재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크기나 모양, 내용 배치가 원본 투표용지와 동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하자의 정도가 덜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관위의 명백한 위법 행위…법적 책임 피할 수 없어

그러나 설사 투표를 무효 처리할 정도로 하자가 중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선관위가 자신들의 과실로 발생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거법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투표용지를 추가 배부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법에는 어긋나지만 위법 행위는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것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관리위원회 개혁이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만약 선거 당일 투표용지 추가 배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법적 근거 없는 내부 관행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당일 추가 배부 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은 법을 그저 '실무적으로' 무시해 왔다는 것은 국가기관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내세울 수 있는 논리가 아닙니다. 물론 그 이전에 법을 어기고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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