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새로 가동한 핵물질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가운데는 강경호 핵무기연구소 부소장.
북한이 지난 4일 '새로 조업한 핵물질 생산공장'의 존재를 공개했습니다. 정부 안팎에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영변 핵단지 내 신축 우라늄 농축시설일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핵능력 증강만이 목표라면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김정은이 직접 시찰하는 모습까지 북한이 선별해 내보냈으니 공개 행위 자체에도 큰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다시 '북한 비핵화' 목표가 공유됐다고 미국이 발표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은 8~9일 북한을 찾습니다. 최근의 일련의 상황들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라는 방식으로 응답한 모양새입니다.
북한이 소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장 난 레코드판을 틀어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도 항상 같은 말만 되풀이한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핵능력의 증강에 따라 논리의 구조를 진화시켜 온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 진화의 과정을 한 번 복기해보고자 합니다.
북한이 공식 문헌을 통해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한 것은 2005년 2월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고, 한 달 뒤에는 담화를 통해 '당당한 핵무기보유국'으로 스스로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여 만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까지 단행했습니다. 이 시기 북한의 전략은 핵보유의 '모호성'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2003년 베이징 북미 접촉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했다가, 2004년 6자회담 과정에서 그 의미를 축소하는 등 북한의 발언이 일관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핵능력의 불확실성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했지만 결국 이런 전략은 유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폐기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북한은 1차 핵실험을 진행하고도 국제사회로부터 핵능력 수준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핵실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은 분명했지만, 1차 핵실험은 폭발력(1kt 이하)이 외부의 예상보다 낮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내 해소되기는 했으나 방사성 물질이 탐지되기 전까지는 실제 핵실험이 성공했는지 일부 논란이 존재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북한 역시 핵보유국 지위를 단기간에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핵보유국 인정 이전에 핵능력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이후 핵능력이 미국에 실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3월 말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고 핵능력 고도화에 말 그대로 '전력'을 다했습니다. 핵보유가 '부득불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던 북한의 담론은 2013년 3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영구화'로 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4차, 5차, 6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는 등 미사일도 끊임없이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전시했습니다. '우리 핵능력 있다니까, 정말'이라고 초기엔 주장하는 듯 보였고 병진노선이 선언된 이후론 '당신들을 이만큼이나 위협할 수 있다'고 외치려는 듯 보였습니다. 2018~2019년 북미 정상외교라는 예외적 국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다시 핵보유국 인정 투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북미 협상 실패 이후 등장한 북한의 요구는 새로운 담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022년 8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핵을 '국체'라고 주장했습니다. 핵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국가 그 자체와 다름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헌법과 법률, 핵의 운용이라는 새로운 방패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2022년 9월 채택된 핵무력정책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법은 핵 사용의 조건과 지휘통제 시스템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핵보유를 주장하는 단계를 넘어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제도화하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최근 공개된 북한 개정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있다"는 조항까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핵무력 지휘권을 헌법에 이렇게 못 박은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지난달 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국가핵무력정책법령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고착시킨 국가 헌법에 따른 의무 이행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헌법과 법률이 배수의 진처럼 활용되고 있는데, 사실 북한이 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비핵화 요구를 차단하기 위한 도구라는 얘기입니다.
당연하게도 북한의 핵 능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증강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핵을 보유한 국가인 만큼 이를 인정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앞으로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때 국제사회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요구했다면, 북한은 역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보유국"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지 모릅니다.
안타까운 점은 주변 환경 역시 북한에 불리하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다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를 묶어두던 유일한 핵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은 올해 2월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사실상 강대국들의 핵의 빗장도 풀렸습니다. 강력한 우군도 등장했습니다. 러시아는 핵비확산과 군축의 논의 장이어야 핵확산금지조약(NPT)평가회의에서 북핵을 노골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러시아는 북핵 문안이 합의문에 들어간다면 컨센서스를 파기하겠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러간 밀착이 러우전쟁 종료 이후에도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실패했고 이제는 북핵 위기 관리로 논의를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한·미 조야에서 조금씩 제기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논쟁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북한이 수십 년간 이어온 핵보유 인정투쟁이 일정 부분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애초 북한의 인정투쟁은 끝을 상정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핵능력을 축적할수록, 또 국제 환경이 변화하면 하는대로 북한은 새로운 논리와 방식으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