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난달 베이징에서 미중·중러 연쇄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년 만의 평양 방문으로 대(對)한반도 영향력 과시에 나섭니다.
5일 중국의 '당 대 당' 외교를 담당하는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에 따르면 시진핑 당 총서기(국가주석)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오는 8∼9일 북한을 국빈 방문합니다.
시 주석의 방북은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이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9개월 만입니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이번 방북은 현재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중국이 갖고 있다는 점을 국제적으로 보여주는 행보로 평가됩니다.
시 주석은 지난달 14∼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0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이징에서 만났습니다.
앞서 1월에 열렸던 이재명 대통령과의 베이징 정상회담까지 더하면, 올해 상반기에 한반도 문제 당사국 정상들과 모두 접촉하는 것이 됩니다.
이희옥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시 주석의 이번 방북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해 방중에 대한 답방 성격"이라며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안보 정세를 논의하고, 북한의 '두 국가론' 이후 외교 정책 방향과 새로운 북중 협력이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시진핑, 韓美 '北비핵화' 입장 전달할까…'대북제재 완화'엔 공감남북·북미 대화의 동력이 살아 있던 2019년 방북 때와 달리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얼어붙은 상태입니다.
북한은 '비핵화'를 거부하며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하고 있고, 남한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채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트럼프 1기' 때 활발했던 북미 간 상호작용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한미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들의 대북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하면서 '간접 소통'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시 주석을 만나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후 취재진에 "한반도가 장기적으로 비핵화돼야 하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서 지금 핵을 없애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겠느냐. 제가 보기엔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 현재 상태에서 중단하고, 보상이나 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 있지 않냐"며 '동결·축소·비핵화'의 3단계 구상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진정성을 북측에 충실하게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중국에) 했다"며 "이런 점에 대해 중국 측의 공감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핵화 문제는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됐습니다.
미국 백악관은 미중 정상회담 팩트시트에서 양국 정상이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중국은 회담 공식 보도자료에서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언급만 넣었고, '비핵화'는 별도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선 북한 비핵화가 빠진 채 대북 제재 반대 입장이 포함되는 등 온도 차가 감지됐습니다.
중국은 이달 1일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러시아에 파견해 의견을 조율했고, 러시아 외무부 발표에 따르면 양측은 북한 안보를 위협하는 경제 제재와 강압적 압박 등 수단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한반도 정책이 연속성·안정성을 띠고 있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최근에는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일이 드물지만 한반도(북한) 비핵화 입장에는 변동이 없고, 북한을 옭아매는 경제 제재에는 반대합니다.
한미 연합훈련 등 '북한의 안보 우려'도 살펴야 한다는 점 역시 꾸준히 제기하고 있습니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북핵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 과거에는 '마지못한 관용'이었다면 지금은 '마지못한 수용'이 됐는데, 그런 차원에서 비핵화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채 대북 제재 해제를 지지하면서 경제 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희옥 명예교수는 "중국이 선제적으로 대북 제재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현실적으로 국경 등에서의 교역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제재의 숨통을 열어 줄 수 있다"면서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안보 우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통해 새로운 한반도 환경 조성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 중국 투먼에서 바라본 두만강과 북한 남양
9월 방미 앞두고 '北 레버리지' 확보…'두만강 해양 진출' 협조 구할듯북한과 중국은 최근 '이상기류설'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지난해 9월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을 계기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격 방중하면서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시 주석은 작년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한국 국빈방문 이후 해외 방문 없이 중국 안에서 외교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북한이 시 주석의 올해 첫 해외 방문지로 선택된 것은 이번 방중이 중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중러 정상회담에 이어 북중 정상회담으로 완결되는 연쇄 외교는 중국이 미국 주도 질서에 맞서는 대항 연합의 중심축임을 선언하는 전략적 퍼포먼스"라며 "오는 9월 예정된 2차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협상 레버리지를 손에 쥔 채 워싱턴과 마주하겠다는 선제적 포석"이라고 짚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은 대북 소통 창구인 중국의 전략적인 가치를 높일 것이고, '한반도 중재자' 지위를 선점해 협상의 조건을 통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북중 양자 협력에 속도를 붙임으로써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을 중국 중심의 궤도로 다시금 끌어들이는 것 역시 시 주석의 전략적 이익과 맞닿아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관광·의료·철도 등의 협력과 중국 자본의 대북 투자는 경제 발전과 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 도약, '지방발전 20×10 정책'(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공장과 병원 등을 건설하는 정책) 정책을 내세운 김정은 위원장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중국이 두만강 하구를 통한 출해(出海·해양 진출) 문제에서 북한의 협조를 얻을 수 있을지도 관심을 끄는 문제입니다.
문일현 교수는 "과거에는 북한과 러시아가 모두 두만강을 열어주지 않고 버텼는데 이제 러시아는 중국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북한이 대가를 받고 수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중국의 두만강 출해가 가능해지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구멍이 뚫리게 되고, 연안 국가들은 불안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이희옥 명예교수는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최근 중국이 중시하고 있는 일본 및 대만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북한의 지지를 확인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