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조합이 2017년 원청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원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시행 전 사안이라면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와 명시적이거나 묵시적 계약을 맺고 있는 자'로 봐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오늘(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하청노조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쟁점은 원청을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였습니다.
올해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습니다.
하청노조는 법 개정 이전에 대해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해왔는데, 대법원이 구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에서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다수의견을 낸 8인은 "(노란봉투법 시행 전인) 구 노동조합법 2조가 적용되는 사안에서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관한 기존 법리는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986년 원청의 사용자성에 관해 '근로자를 지휘·감독하면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잣대로 제시한 판례를 유지한 것입니다.
과거 대법원은 2010년 원청이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지만, 이날 다수의견은 '부당노동행위 주체'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는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수의견은 "원청이 하청노조에 대해 지배·개입하지 않을 의무 등 소극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단체협약의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2016년경의 단체교섭 사안에 관해 종전 법리를 변경해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규정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리를 창설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경과 규정을 두지 않은 만큼 향후 개정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사용자의 개념을 개정 취지에 맞게 해석하면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며 종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는 헌법이 노동 삼권을 직접적으로 보장하는 취지를 고려해야 하고, 하청노조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노동 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여러 산업 분야에서 업무의 외주화가 확산하고 간접고용이 급격히 늘어난 점, 대법원이 새로운 유형의 노무제공 관계에서 노동 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리를 발전시켜온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청노조는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이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며 2016년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7년 1월 원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1·2심은 HD현대중공업이 단체교섭 의무를 지지 않는다며 하청노조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하청노조가 불복하면서 대법원은 2018년 12월부터 사건을 심리해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올해 3월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이 시행됐습니다.
이에 하청노조의 원청 사업장에 대한 교섭 요구가 이어지면서 원·하청 간 갈등도 불거지는 양상입니다.
판결 선고 뒤 금속노조는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규탄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들은 "오늘 판결은 개정 노동조합법 취지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이미 사회는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가 사용자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대법원은 이런 시대적 요구와 노동 현장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