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 브리핑

5.18에 '탱크 데이' 이벤트…정용진 회장 책임은 [이브닝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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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이벤트에 신세계 그룹 '발칵'

'5·18'을 들으면 국민의 열에 아홉은 자연스레 광주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것입니다. 4.19, 5.16처럼 우리 역사에 날짜로 각인된 몇 안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념일에 진행하는 이벤트 이름이 '탱크 데이'였습니다. 함께 적힌 슬로건이 '책상에 딱'입니다. '이게 실화냐'라는 생각이 저만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거센 논란이 일었습니다. 관련 시민, 사회단체뿐 아니라 이념 성향을 떠나 대부분 언론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SNS를 통해 스타벅스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신세계 그룹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정용진 그룹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를 바로 해임했습니다. 이번 이벤트 관련 직원들도 모두 중징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정도로는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안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오신 모든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하며, 어떤 해명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 회장은 우선 이번 사태의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동시에 자신을 포함해 역사 인식 교육도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입니다. 스타벅스 담당자들의 단순 실수나 인식 부족 수준이 아니라는 의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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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에 대한 모독이자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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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비극과 아픔을 심각하게 모독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큽니다.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아팠던 두 역사적 사건을 연상시키며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계엄군은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앞세워 무력 유혈 진압을 감행했습니다. 그런 역사적 비극의 상징인 '탱크'라는 단어를 '5월 18일'이벤트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의 치안본부장이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늘어놨던 변명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소환합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국가 폭력과 은폐 시도를 마케팅 문구로 가볍게 소비했다는 점에서 변명할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공식 이벤트로 버젓이 홈페이지까지 올린 만큼 의도가 없었겠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상징적 키워드들이 정교하게 병렬됐다는 점도 의혹거리입니다. '5월 18일'이란 특정 날짜에 '탱크'라는 진압 도구, 그리고 다른 사건이지만 같은 민주화의 맥락에서 주요 장면인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아무런 의도 없이 우연히 한 포스터에 조합해 배치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또 대기업의 대규모 프로모션은 여러 단계의 결재와 검수를 거쳐 전사적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관련 직원이 이 프로모션을 검토했고 논란의 소지를 따져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겠냐는 점입니다. 게다가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스타벅스 측은 이벤트를 즉각 전면 취소하는 대신, '책상에 탁!'을 '작업 중 탁'이나 '작업 중 딱~'으로 교묘하게 문구만 바꾸고 '탱크'라는 표현은 그대로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초기 대응을 봐도 적어도 '탱크'라는 용어는 끝까지 고수하려 했다고 해석됩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단어라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설명입니다.

정용진 회장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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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논란이 일자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해임과 관련자 엄벌을 지시했습니다. 직접 사과문도 올렸습니다. '오너가 개입되지 않은 사안'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① '멸공' 구호로 촉발된 오너리스크

정용진 회장은 2021년 자신의 SNS에 '멸공' 구호를 지속적으로 올려 사회적 논란을 유발한 바 있습니다. "멸공, 난 공산주의가 싫다", "콩당(공산당) 상당히 싫다"는 해시태그와 글을 연달아 게재했고 SNS측에서 가이드라인 위반이라며 해당 글을 삭제하자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급기야 멸공 발언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포함된 뉴스를 캡처해 올리면서 중국 비즈니스 비중이 높은 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빚었습니다. 또 당시 대선 정국에서 보수 진영 인사들이 '멸콩 챌린지'에 나서자 반대 진영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면서 오너리스크 논란을 촉발했습니다.

② '미안하다, 고맙다' 문구 반복으로 세월호 유가족 조롱 의혹

2021년에는 정 회장이 SNS에 우럭, 랍스터, 소고기 등의 요리 사진을 올리며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컨대 "미안하다 고맙다. 너희들의 희생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구나." 등의 글을 쓴 것입니다. 이 문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월호 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 남겼던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추모 글과 일치했습니다. 당시 보수 진영에서 '희생자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이 적절하냐'고 공격하자 이 맥락을 가져와 음식재료의 죽음에 빗대어 비아냥거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타인의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희화화했다며 지탄을 받았습니다.

③ '노빠꾸' 외치며 대중 설전

정 회장은 자신의 보수적 성향이나 거침없는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네티즌들과 SNS 상에서 직접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지적받을 때마다 노빠꾸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여과 없이 반감을 표시했습니다. 주변 측근들에게 "이 정도 발언도 불편해하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것 아니냐"라는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결국 오너의 이런 행보가 기업 내부의 조직 문화나 마케팅의 방향성에 은연중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정 정치 성향의 임직원들이 '이 정도 표현은 용인될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은 정용진 회장에 대해 공격의 날을 세웠습니다. 정진욱 의원은 "격노니, 스타벅스 사장 경질로 물타기 하지 말고 먼저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순서"라고 꼬집었습니다. 최민희 의원도 "뻔한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습니다. 권영국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사죄와 사퇴 모두 정 회장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스타벅스나 정용진 회장이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처벌법'은 허위사실을 유포해 5.18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과 같이 비유와 은유적 표현으로 모욕성 발언을 한 행위는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개인적인 비방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도 처벌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신세계 그룹이 빈약한 역사 인식을 드러내며 '마케팅 참사'를 일으켰다는 평가와 함께 도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애써 잊히기를 바랐던 오너 리스크가 재점화되면서 기업 이미지에 또 한 번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나아가 불매 운동 등 혹독한 사회적·경제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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