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수행 기사에게 자녀 등교와 배우자 병원 방문 같은 개인 일정을 시킨 한 다국적 제약 회사 대표가, 직장 내 괴롭힘 판정을 받았습니다. 노동청은 이를 업무 범위를 벗어난 사적 지시로 보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이성훈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A 씨는 2023년 10월, 한 다국적 제약회사 대표의 수행 기사 채용 공고를 보고 파견업체를 통해 지원했습니다.
당시 공고에는 업무 시간과 시간 외 근무, 차량 종류와 휴게실에 대한 내용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면접에 직접 들어온 대표로부터 주 2~3차례 초등생 자녀들의 하교만 도와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A 씨/피해 운전기사 : 이런 질문을 했다는 자체가 이거를 해줘야만 뽑겠다는 취지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제가 원하지 않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A 씨는 채용 직후 1년 동안 주 3차례 이상 자녀 등하교를 도왔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제약사 대표-수행기사 통화(2024년 5월 29일) : 먼저 아이들 하굣길에 내려주시고 오셔서 여기서 4시 55분에 제가 타고.]
학원 등·하원까지 담당하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제약사 대표-수행기사 통화(2024년 6월 12일) : 한 10분 정도 후에 다 각자 학원에 데려다주시면 돼요. ○○ 먼저 데려다주시고 그다음에 유도 ○○ 내려주시면 돼요.]
대표의 배우자가 다리를 다쳤을 땐 6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병원 이동과 개인 일정을 돕기도 했습니다.
[A 씨/피해 운전기사 : (대표 배우자가) 혼자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축을 해 주고, 엘리베이터 타는 데까지 병원 문을 열어주거나 그런 일을 해야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운전만 했다고 볼 수는 없죠.]
A 씨는 이 같은 업무가 일시적인 부탁이 아니라 사실상 일상적인 업무처럼 이어졌다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했습니다.
노동청은 업무 범위를 넘는 사적 지시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대표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렸습니다.
또 구직자에게 알린 채용 내용과 실제 업무가 다를 경우 처벌하는 채용절차법 위반 책임을 물어, 제약회사와 파견업체에도 각각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파견업체에 대해서는 허위 채용 정보 제공을 금지한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최수진/변호사 : 채용 단계에서부터 근로자를 기만하고 부당한 근로관계를 설정하려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음을 노동청이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파견 노동자의 보호에 중요한 선례가….]
회사 측은 "가족 일정 지원은 상호 합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뤄졌고, A 씨의 문제 제기 이후 사적 지시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노동청 판단에 대해 사실관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의제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조춘동, 영상편집 : 최혜란, VJ : 정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