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정인숙 피살사건…시대를 잘못 만난 그를 살해한 진범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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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사망 사건의 진실은?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방아쇠를 당긴 손 - 1970 강변3로 피살사건'이라는 부제로 정인숙 사망 사건을 추적했다.

1970년 3월 17일 밤, 강변3로를 달리던 승용차 안에서 미모의 20대 여인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유일한 사건의 목격자인 그의 오빠 정종욱도 총상을 입어 충격을 안겼다.

사망한 여인은 정인숙. 정인숙은 당시 고위층도 갖기 힘든 회수 여권을 보유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인물. 특히 그의 집에서 발견된 비밀 수첩에는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 사건은 단순한 사망 사건이 아닌 정치 스캔들로 번지게 됐다.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 경호실장부터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최고 실세들의 이름이 적혀있던 정인숙의 수첩.

또한 당시 총상을 입은 정종욱의 병실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며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에 기자들의 원성이 높아졌지만 경찰은 "상부로부터 절대 말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내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라며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함구했다.

그러나 서서히 정인숙의 정체가 드러났다. 당시 권력과 욕망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 곳은 바로 요정. 요정 정치가 성행하던 시기 정인숙은 바로 요정 선운각을 대표하는 호스티스였던 것.

고위 공무원의 딸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4.19 혁명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진 정인숙의 집안. 이후 정인숙은 모델과 배우 생활을 했으나 순탄치 않았고 결국 요정의 마담 주선으로 비밀 요정에 발을 들였고 사교계의 요화로 거듭났다. 그렇게 권력자들과 인연을 맺은 정인숙.

당시 세 살배기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던 미혼모 정인숙. 이에 아이의 아빠는 누구인지 점점 소문이 커져갔다. 정일권 국무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던 가운데 정인숙의 사망 사건은 간첩이나 안보,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맡는 공안부의 부장 검사가 지휘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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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사 기관은 정종욱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하고 그를 체포했다. 그리고 그 후 정종욱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여동생의 재산을 빼앗을 목적으로 벌인 강도 살인이라 판단한 수사 기관. 이에 정종욱은 요정 생활을 관두지 않는 동생에 불만을 품었고 이에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사 기관의 이러한 발표를 믿지 않았다. 범행 동기가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당시 범행 도구도 발견되지 않아 사람들은 더욱 이 사건의 진실은 은폐되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당시 유행했던 노래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사람들은 이 노래의 가사를 바꿔 정인숙의 아이 아빠가 미스터 정이라 노래했다. 그리고 이는 사건 발생 두 달 후 국회 본회의에서도 언급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종욱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정종욱은 무기수로 수감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석가탄신일, 특별 가석방된 정종욱. 그는 사건 20년 만에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또한 자신의 조카가 정일권의 아이라 주장했다.

정종욱 씨는 사건 당일 국무총리실에서 왔다는 두 남성 때문에 차를 세워 운전석의 창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이 한 명이 운전석 창문 안으로 팔을 넣어 정인숙을 총으로 쏘고 정종욱을 협박해 강변 3로로 향하게 했다는 것.

그 순간 도주하려던 정 씨도 총에 맞고 쓰러졌고 이후 두 남성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정종욱이 밝힌 사건의 전말이었다.

당시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는 정종욱 씨는 국무총리 이름을 말하면 그 후환이 두려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썼다는 정종욱. 그는 자신을 돌봐주겠다던 정 총리가 19년간 연락 한 번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출소 후 그의 비서가 4천5백만 원을 건넨 것이 전부라는 것.

또한 그는 조카에게 친부를 찾아주고자 정 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정일권이 사망하고 끝내 조카의 친부는 찾을 수 없었다.

훗날 이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인숙 아이의 아빠가 정일권이라는 설과 그 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부라는 주장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 어떤 것도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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