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원장에 경제 유튜버 앉힌 격? 왜 이해할 수 없는 인사는 반복되는가 [취재파일]

우리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전문성'은 인정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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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명장 받는 황교익 신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지난주 금요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신임 원장으로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황교익 씨가 '농민신문사 기자, (사)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 서울공예박람회 총감독, 부산푸드필름페스타 운영위원장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 현장 경험을 토대로 활동했고, 대중의 삶과 문화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저술 활동과 방송, 강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 왔다'고 밝혔다.

문화관광연구원은 문화예술, 문화산업, 관광진흥을 위한 연구·조사·평가를 목적으로 2002년에 통합 개원한 국책연구기관으로, 문화기본법에 따라 분야별 책무를 수행하며 정책 개발 지원과 통계 생산·분석 등을 수행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은 해당 분야의 연구 실적과 정책적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역대 문화관광연구원장들은 해당 분야의 연구자나 교수, 정책 실무를 경험한 관료 출신이었다. 황교익 씨가 음식 칼럼니스트로서 인상적인 활동을 해왔다고 인정하더라도,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중 비평가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연구원 20여 년 역사상 유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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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원장 자리를 떠올려 보자. 만약 거시경제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국가 재정·경제 전략 수립에 토대가 되는 정책 연구를 수행하는 KDI 수장에, 경제 관련 대중서를 몇 권 쓴 유명 유튜버나 방송의 경제 논객이 임명된다면 어떨까. 아마 경제계와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즉각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을 임명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관광연구원에서 그에 준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황교익 신임 원장은 2021년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되었다가 논란 끝에 자진 사퇴한 전력이 있다. 전문성보다는 당시 이재명 지사를 공개 지지한 황교익 씨에 대한 정치적 보은을 고려한 인사라는 게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번 인사에서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점은 없다. 자리의 무게와 책임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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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시민단체들과 현장의 문화예술인, 그리고 문화정책·예술경영 연구자들이 잇따라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화예술계 파행 인사의 징후는 이전부터 있었다고 지적한다. 황교익 씨 임명 1주일 전에는 국립정동극장 대표에 서승만 씨가 임명됐다. 정동극장 이사장에는 이보다 먼저 배우 장동직 씨가 임명되었다. 이원종 씨의 콘텐츠진흥원장 내정설과 그에 따른 논란도 있었다. 모두 자리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췄다기보다는 '이재명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던 인사라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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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치색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친소 관계가 업무 적합성과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인사 기준이 되어 가는 것 같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런 인사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예술행정이나 문화정책은 '웬만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문화예술을 독자적인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홍보수단 정도로 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치적 보은 논란이 아니더라도, 최근 발표된 국립심포니 대표, 국립오페라단 단장 인사를 두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장은 서울시오페라단장 시절 일어난 무대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 국립심포니 대표는 오케스트라 행정과 전혀 관계없는 피아노과 교수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국립심포니는 전임 대표 역시 당시 문화부 장관 지인이었던 성악가가 임명돼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휘자 장한나 씨의 예술의전당 사장 발탁을 마냥 환영하기도 어렵다. 이 인사는 최연소 여성 사장이며 인지도 높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신선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예술의전당 사장은 예술감독이 아니라 경영자의 업무를 하는 자리다. 예전에 예술가 출신 사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자리는 예술 경영과 행정 전문가가 맡는 게 자연스럽다. 장한나 씨가 지휘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의전당 업무에 집중하겠다고 밝한 상황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상황이라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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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오랫동안 문화예술계를 취재하면서, 예전에는 그래도 전문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금은 있었는데 요즘은 온통 정치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정치색 없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용된 사람조차도, 정권이 바뀌면 '저쪽 편'으로 치부하고 아웃시킨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마찬가지다.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예술계 전체를 아우르는 전문가 풀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는 좁은 풀 안에서 인사가 결정된다. ‘우리 편이면서 문화예술계에 발을 걸치고 있음’이 자격 요건이 되는 셈이다. 중앙정부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수많은 공공 문화예술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정치적 연줄이 결정적이라는 걸 보고 '학습'한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정치권 줄대기에 열중한다. 정치적 연줄로 얻은 자리가 ‘경력’이 되어 다음 인사의 근거가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정말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 인사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사안이다. 비정상적인 인사로 잠깐 시끄러워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흐지부지된다. 나쁜 인사가 선례가 되어버린다.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이라고 안될 게 뭐 있냐는 식의 논리가 반복되며, 상황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악화된다.

황교익 씨의 임명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학계의 반발은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이 터져나온 양상이다. 이들이 잇따라 내놓은 공동 성명은 단순히 이번 인사 하나를 겨냥하지 않는다. 문화정책·예술경영 연구자들의 성명은 '현재의 형식적인 공모제는 이미 내정된 인사를 안착시키는 통로로 전락했다'고 짚는다. 현장 예술인들은 '직함은 있으나 현장의 신뢰가 없는 리더, 전문성은 없으나 권한만 있는 수장'이 반복 임명되는 상황이 문화예술 생태계를 어떻게 황폐화하는지를, 지난 정권들을 통해 이미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 말이 무겁게 들려야 한다. 지금의 반발은 특정 인물 한 명을 향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인사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인사의 기준이 반복적으로 훼손될 때 한국의 문화정책이, 공공 문화예술기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가이다. 점점 더 많은 청년 예술인과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서 미래를 꿈꾸며 전문성을 갈고닦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인사 관행이 이 생태계 안에서 전문성이 과연 존중받을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물음에 정부가 어떻게 답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문화정책이 어떤 토대 위에 서게 될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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