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0:19 어느 날 갑자기 테러 당한 우리 집
01:18 소름 돋는 공통점, '배달의민족'?
03:57 사적 보복, 대체 누가, 왜?
마스크를 쓴 남성이 현관문에 무언가 뿌리고 연신 주변을 살피더니, 배달원이 등장하자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이른바 사적 보복을 대신해주는 장면으로 남의 집 문 앞에 뿌린 건 바로 인분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 집 현관이 오물과 낙서로 더럽혀진다면 어떨까요?
1. 어느 날 갑자기 테러 당한 우리 집
특히 피해자들은 특정 인물과 원한 관계가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불안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범행 방식은 꽤 조직적입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원한을 대신 풀어준다'는 명목으로 의뢰를 받고, 의뢰인에게 돈을 받은 뒤 이른바 행동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지목 대상의 주거지로 찾아가 인분 같은 오물을 뿌리고 래커칠로 낙서를 하는 방식입니다. 범행 이후에는 그 장면을 촬영해 다시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리며 버젓이 인증을 남깁니다. 대화방에는 행동대원을 모집하거나 범행을 홍보하는 글도 올라오고 행동대원들은 얼굴을 일부 가린 채 각오를 다지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특공대입니다. 계좌팔이들 사냥하면서 다니겠습니다, 파이팅!]
수사에 나선 경찰은 행동대원들을 검거했지만, 이들이 텔레그램으로 지시를 주고받는 탓에 조직의 윗선에 대한 추적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2. 소름 돋는 공통점, '배달의민족'?
앞서, 지난 1월 22일, 경기 시흥시에서 누군가의 의뢰로 테러 대상자로 지목된 B 씨에게 범행이 일어났습니다. 이틀 뒤 24일 양천구에서 A 씨의 집에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행동대원이 저지른 범행을 추적해보니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테러를 실행한 집들이 모두 B 씨의 가족, 지인 등 B 씨와 연관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양천구에 사는 피해자 A 씨는 B 씨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 씨는 B 씨의 가족과 친한 사이로 B 씨의 가족 중 한 명이 A 씨의 집으로 배달의민족을 통해 음식을 대신 주문했던 적이 있었던 겁니다. 이 점에 주목한 경찰은 이달 초 배달의민족을 여러 차례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여기가 저희 사무실인데요.]
그 결과 배달의민족 외주사 소속 상담 직원이던 40대 남성 여 모 씨가 사내망에서 업무 외의 목적으로 고객들의 배달 주소를 검색한 기록을 확보했습니다. 다시 말해 배민 앱에 등록된 주소지와 개인정보를 빼돌려 사적 보복에 이용한 겁니다. 취재진도 여러 날 추적 끝에 이 일당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 모 씨 /배달의민족 외주사에 위장 취업 : 이거(휴대전화)는 제가 확인을 한 번 하고. (아뇨, 아뇨.) 개인정보가 있기 때문에. (아니라니까.)]
조사 결과 여 씨는 애초부터 윗선의 지시를 받고 지난해 7월 외주사에 위장 취업한 뒤 테러 의뢰 요청이 있을 때마다 고객의 주소 등 개인정보를 지속적으로 넘겨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외주사 급여와는 별도로 매달 수백만 원을 받고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이렇게 확보된 개인정보는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 내부로 전달되고 조직은 이를 바탕으로 의뢰를 받아 돈을 챙긴 뒤 행동대원에게 실제 범행을 지시하는 구조로 운영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은 여 씨에게 위장 취업을 지시하고 테러 의뢰를 받는 등 이른바 '윗선'으로 지목된 30대 남성 2명을 체포해 구속했습니다.
[이 모 씨 /'사적보복' 조직 윗선 : (나와, 나와!) 안 도망가요. (시동 꺼!) 조금만 지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여 씨가 상담사로 일하며 업무 외의 목적으로 검색한 고객 정보 규모는 1천 건 안팎으로 확인됐는데, 이 중 수십 건이 실제 보복 테러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범행을 실행한 행동대원 검거는 있었지만, 조직 핵심인물이 검거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 모 씨 /'사적보복' 조직 윗선 : (테러 범행 설계하고 지시하신 거 맞습니까?) 아니에요. (배민 외에 다른 기업에도 취업 지시하셨습니까?) …….]
3. 사적 보복, 대체 누가, 왜?
이들은 왜 사적 보복을 일삼는 걸까요? 또 누가 이런 사적 보복을 의뢰하는 걸까요? 이 범행은 특정한 하나의 목적이라기보다 의뢰인마다 각자 다른 이유를 갖고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금전 문제부터 개인적인 갈등, 감정적인 보복까지 사안마다 배경은 제각각일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경찰은 각 사례마다 어떤 이유로 범행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선욱/변호사 : 행위를 실제로 부탁한 사람 즉 교사한 사람(의뢰인)도 동일하게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사상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그리고 재물적인 손해에 대해서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배달의민족 같은 배달앱에 등록된 주소는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라면 집에 방문해 대신 음식을 주문해본 경험도 있어 본인뿐 아니라 지인들의 주소까지도 노출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테러 일당이 이런 점을 노려 배달의민족의 고객 정보를 악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문제는 상담사 등이 고객 정보를 조회할 때 그 목적이 정당한지 회사 차원에서 걸러낼 장치가 있었는지입니다. 배달의민족 측은 관련 규정이 존재한다고 밝혔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황석진/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배달의민족에 정보 동의를 했고, 관리 감독(책임)은 배달의민족에 있다고 봐야 해요. 개인정보가 악용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배달의민족은 저희 보도 이후 사흘 만에 공식적인 사과문을 게시했고 정보가 조회된 내역이 있는 고객들에게는 연락을 돌려 사과의 의미로 10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고도 전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개인정보 유출을 자진 신고했고 정식 조사 절차를 밟고 있는 걸로도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테러 일당이 주소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배달의민족뿐 아니라 다른 기관이나 업체의 개인정보까지 노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취재 : 김규리,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류지수, 디자인 : 양혜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