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호주 저녁 6시 뉴스. 앵커의 첫 한마디가 현재 호주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보다 더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걱정과 분노입니다."호주도 심각
이란과 미국 간 군사 충돌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급격히 불안정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연료 사재기와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 차질이 심화되는 가운데, 비교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평가되던 호주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쟁 발발 이전, 호주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호주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해 3월 기준 평균 약 1.98달러를 기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2.25달러를 넘어섰다.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일부 주유소에서 2.5달러의 가격 안내가 등장했으며, 추가 상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디젤은 더 심각지난 2월 평균 디젤 가격은 리터당 1.80호주달러. 그러나 전쟁 이후 디젤 가격은 무섭게 오르기 시작하더니 2.0호주달러까지 상승했다. 호주 ABC 방송을 보면 일부 주유소는 디젤을 리터당 3호주달러에 판매하는 곳도 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디젤 가격이 전쟁 이후 최대 40%까지 급등했다. 가격도 문제이지만 공급 차질도 이어지고 있다. 남동부 빅토리아에서는 약 1천700개 주유소 중 160여 곳이 연료 부족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도 약 2천400개 주유소 가운데 100여 곳이 디젤 재고 고갈 상태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쯤 되면 질문은 달라진다. "얼마나 비싸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남아 있는가"다.
급기야 총리까지 나섰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까지 생방송에 등장해 사재기를 자제하고 당장 필요한 물건만 구입할 것을 전 국민에게 당부했다.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총리의 말은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와 공급 체계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신호로 보일 정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왜 호주는 이렇게 취약한가핵심 원인은 중동 에너지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이다. 이 해협에서의 물류 차질은 곧바로 글로벌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충격이 크다.
호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루 석유 소비량은 약 114만 배럴에 달하지만, 생산량은 40만 배럴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하루 약 70만 배럴을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다. 더 중요한 점은 수입 구조다. 호주는 원유 자체보다 정제된 연료(휘발유·경유·항공유) 수입 비중이 훨씬 높다. 주요 공급망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이 핵심 공급국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호주로의 연료 공급도 빠르게 위축됐다.
'디젤 경제' 구조의 취약성호주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은 디젤 의존도다. 광활한 국토와 장거리 물류 구조로 인해 대형 트럭 중심의 운송 시스템이 발달했으며, 이들 차량은 대부분 디젤을 사용한다. 철도보다 도로 운송 비중이 높고,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거리 이동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고 토크·고 연비 특성을 가진 디젤 엔진이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트랙터, 콤바인, 관개 설비 등 주요 농기계 대부분이 디젤 기반이며,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디젤은 사실상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관광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장거리 이동이 기본인 호주 관광 특성상, 대형 관광버스 역시 거의 전량 디젤을 사용한다. 호주 여행 경험이 있는 분들은 느꼈을 것이다. 거대한 버스 엔진 소음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기버스는 충전 인프라 부족과 주행거리 한계로 인해 아직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의 구조적 차이한국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은 한때 디젤 승용차 비중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반면 호주는 승용차에서의 디젤 비중은 낮지만, 물류·산업 부문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 구조는 곧바로 물가로 연결된다. 디젤 가격 상승은 물류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식료품 등 생활물가 전반에 연쇄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낮은 비축량, 더 큰 리스크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호주의 연료 비축 수준은 선진국 대비 낮은 편이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최소 90일분 비축을 권고하고 있지만, 호주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유지해 왔다. IEA 권고 비축량의 1/3인 고작 30일.
이러한 구조는 정유시설 축소와 직결된다. 호주는 과거 대비 정유 인프라가 크게 감소하면서,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는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대신,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수입 의존 구조, 디젤 중심의 산업, 낮은 비축량 등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흔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호주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