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 브리핑

배럴당 134달러…한국의 해법은 러시아일까? [이브닝 브리핑]

'4월 에너지위기설'에 긴장하는 업계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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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국의 필요'에 따라 전쟁이 조기에 끝날 거란 예상에도 상황은 계속 격화하고 있다. 이란의 발전 시설을 파괴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이 내건 시한은 한국시간 내일(24일) 오전이다. 국제유가는 천정부지의 상황이다. ⓵세계 원유 해상운송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마비가 현실화된 사례가 사실상 처음이란 점이 큰 불안감을 불러왔다는 점, ⓶상황을 해결해야 할 미국은 당장 원유 수급에 큰 문제가 없는 나라이고, 중국 또한 대체 공급원을 가졌다는 점이 조기 수습 전망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각 국가들은 각자도생 상황으로 내몰리는 양상이다. 한국도 대응책이 급하다. 이번 상황을 넘기더라도, 언제든 반복될 위기에 대한 빠른 대비가 필요하게 됐다.

호르무즈 통과 물량이 70%..미국산은 이미 2위

한국의 원유 수입 현황을 짚어보면, 중동산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미국산 원유 비중이 커진 점이 특징이다. 중동산 수입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이 중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전체 원유 수송량의 최근 국가별 비중을 보면, 중국이 37%로 1위, 다음은 인도, 3위가 한국, 4위가 일본으로 나타난다. 중국, 인도행 유조선은 이란과 협의를 거쳐 통과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이 가장 불리한 상황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는 사우디 산이 33%, UAE가 11%, 이라크 10%, 쿠웨이트 8.5%지만, 2위는 17%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이다. 또 캐나다 등 북미 지역으로 계산하면 20% 정도가 북미 대륙에서 수입된다. 미국산이 늘어난 이유는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생산량이 늘어났고, 한국은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를 물지 않는 환경이 작용했다. 여기에 원유 수입선을 사실상 국가가 관리하는 방식인 한국 입장에선 대미무역흑자로 인한 미국의 심기를 고려해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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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원유 수입은 운송 경로가 길고, 원유의 성질이 '경질유'라는 점이 단점이다. 텍사스 등 서남부 지역과 남부 해안의 멕시코 만에서 주로 생산되는 만큼, 파나마 운하를 지나거나, 아니면 남쪽으로 우회해 아프리카 남부 희망봉을 지나는 긴 항로를 택해야 한다. 대형유조선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운송기간이 한 달 넘게 소요되며 비용이 늘어난다. 또 한국의 원유정제 시설이 중동산 '중질유'에 특화된 체계여서 경질유 가공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미국산 수입의 약점이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는 모두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미국산 수입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해당 원유 성분에 맞는 정제 시설을 적절하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부각된 알래스카 산 에너지 개발이 본격화하면, 미국산 수입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개발 자체와 생산량이 부족하지만 활성화된다면 운송 경로도 용이하다는 점에서 장기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때는 5% 넘었던 러시아산 비중..2022년 수입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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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새로운 국면은 아니다. 2021년으로 돌아가 보면, 한국은 전체 원유수입량에서 5.6% 비중으로 러시아산을 수입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수입 금지 조치가 이뤄지면서 2022년 4월을 마지막으로 한국도 수입이 끊겼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미-이란 전쟁의 여파가 강해지면서 한동안 중단됐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다시 논의되는 것은 경제적 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한 기름 값 상승세를 꺾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국에 대해 대규모 추가 관세를 부과했던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판매 승인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지난 11일까지 선박에 적재된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등에 대한 모든 거래를 다음 달 11일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러시아는 현재 약 1억3000만 배럴 가량의 원유를 유조선에 저장해 바다에 띄워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받는 '코즈미노'항..운송 면에선 미국산보다 유리

현재 국내 정유 업계는 중동산 원유 수송을 홍해로 우회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동시에 미국과 아프리카, 북해산 원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러시아산 수입에 대해 긍정적이다. 국내 정유 4사 담당임원들은 최근 정부와의 대책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가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정치적 문제를 배제하고 가정한다면 운송 시간과 경로 면에서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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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목되는 곳이 러시의 극동 연해주 지역의 '코즈미노(Kozmino)'항이다. 러시아 동부지역 최대의 원유 수출 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간 동쪽에 있는 항구이다. 전체 대륙에서 보면 중동부 시베리아의 원유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로 이어주는 4천7백여 킬로미터의 긴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곳이다. 한국 정유사들은 이곳에서 울산과 여수 등 국내 정유시설이 있는 항구로 원유를 실어올 수 있는데, 이 경로는 2~3일 정도가 걸린다. 최대 20여일이 걸리는 중동산 수입보다 물류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다른 쟁점이 있다면 원유의 품질이다. 러시아산 원유는 '초저황경질류'로 분류되는데 쉽게 표현하면 찌꺼기가 많은 중동산 원유에 비해 맑은 원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유 업계는 더 끈적끈적한 중동산 원유를 정제하는 시설에 최적화된 상태인데, 경질유를 정체하는 시설보다 더 고도화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대형 정유사들 관계자들은 중질유와 경질유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식으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경험이 이미 쌓여있는 만큼, 정치적 걸림돌만 해결된다면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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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변화 넘어 자주화 필요?..한국이 겪을 극한외교

러시아는 자국 원유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에 수출하고 싶어 한다. 푸틴은 러시아 극동지역을 에너지 클러스터로 만드는 ESPO(동시베리아-태평양)프로젝트에 공을 들여왔다. 원유 수입 환경의 변동에 따라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입장에선 러시아 원유는 미국산과 함께 중요한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를 일시적으로 풀어준다 해도 기존 제재로 인한 각종 제도적 제약이 많다는 점이 여전한 걸림돌이다. 국제 금융결제 네트워크인 '스위프트망 제재'가 우선 문제로 지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퇴출당했다. 해외 구매자들이 러시아 기업에 수출대금을 보내는 경로가 사실상 막혔고, 제3국을 통해서라도 결제에 나설 경우, 미국의 2차 제재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거래 경로 제재에 대한 입장은 모호한 상태를 취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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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미국이고, 에너지주권은 생존의 문제라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과의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활로를 찾는 정부의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이 강화된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거래에 대한 내부 갈등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론 합리적 대안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요소가 많다"는 얘기가 정부 내부에서 나온다. 하지만 앞으로 한미 동맹의 변화, 지정학적 격변에 따라 한국의 에너지 확보도 각자도생의 전략을 각오해야 한다. 현 정부가 장기 전략으로 거론하는 북극항로 개발도 러시아 북부가 포함된 북극 에너지 확보가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 에너지원 다변화는 국가 생존의 문제라는 점에서 큰 틀의 협상을 통한 에너지원 '자주화'의 전략을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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