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청년이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됐지만, 40년 전 늦가을 기억은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였습니다. 1986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이었던 박영일 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반독재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해 10월 28일, 건국대 교내에서 열린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 결성식에 참여했던 그는 본관에 갇힌 뒤 나흘 만에 경찰의 강제진압 작전 끝에 연행됐습니다. '황소30' 이라는 작전명 아래, 8천 여명의 전투 경찰과 헬기까지 투입된 진압 작전이었습니다.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 경찰은 학생들을 '공산혁명분자'로 규정하고 농성자 1,525명을 전원 연행했고, 이 중 1,285명이 구속됐습니다. 학생운동 사상 최대 공안 사건이자, 단일 사건 최다 구속자를 기록한 '건대 사건'입니다. 박 씨가 기억하고 있는 그 날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옥상에서 경찰의 진입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더는 막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늘에서는 경찰 헬기가 최루탄을 옥상으로 분사하여 하얀 가루가 비처럼 내리고 있었고, 건물 밑에서는 소방차에서 뿜는 물줄기로 건물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밑을 내려 본 순간 전경들이 최루탄을 직격으로 쏘아 이를 피하였습니다.
옥상은 난장판의 지옥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최루탄 가루는 밑에서 쏘아대는 소방 물줄기와 합쳐져 비처럼 내리고 있었고, 옥상 중간에는 공포에 질린 여학생 수십 명이 앞사람 등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백골단은 긴 막대기로 학생들을 마구 구타하기 시작하였고 저도 어깨와 등을 맞으며 앉으라는 말에 모두가 주저앉았습니다. 바닥은 최루탄이 섞인 물에 바지가 젖었고 엉덩이가 따가웠습니다.
- 10.28 건대 시위 참여, 박영일 씨 재심청구 진술서 중 일부 발췌
▶ 관련기사 :
[단독] 건대 퍼부은 '최루탄 비'…억울한 옥살이 한 풀까 (SBS 8뉴스, 26. 3. 10)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전두환 정권이 명명한 '건국대공산혁명분자난동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시위 참여 학생들을 용공세력 혹은 반국가세력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박영일 씨 역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영장 없는 체포와 엿새 간의 불법 구금 등을 통해 확보된 진술은 그대로 유죄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박 씨는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고 약 7개월 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복역 중에도 구타와 가혹 행위는 이어졌습니다. 교도관에게 운동 시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한겨울 일주일 간 징벌방에 갇혀 이불도 없이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2심 재판부가 집행 유예 결정을 내린 다음에야 박 씨는 풀려났습니다. 이듬해인 87년 6월의 일입니다.
이후 박 씨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낙향했고, 얼마 안 가 기자의 꿈을 접고 노동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간 판결문에 찍힌 죄목과 낙인은 그대로였습니다. 박 씨를 비롯한 건대 사건 피해자 80명은 지난해 5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수사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불법 구금을 당해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됐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받았습니다. 박 씨는 진실화해위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등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40년 만의 재심 개시 결정입니다.
"40년 전 불법 체포 과정과 영장 발부의 위법성, 모두 인정"이 사건 변호인인 하인준 변호사는 재심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986년 당시 경찰은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사후 구속영장이 아니라 일반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경찰의 체포 과정뿐 아니라 검사의 영장 청구, 법원의 영장 발부 과정까지 모두 위법했다는 취지입니다."
당시, 수사기관이 서울 시내 유치장이 가득 찰 만큼 학생들을 막무가내로 잡아 들여 놓고서 나흘에서 닷새 동안 영장 없이 불법 구금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발부된 영장도 엉터리였다는 것을 법원이 분명히 지적했다는 뜻입니다. 재심 대상 판결의 기초가 된 증거들이 불법 구금 상태에서 수집된 만큼, 향후 재심 본안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살아나는 고통…"더 많은 국가폭력 피해자 용기내길"박영일 씨는 앞서 첨부된 본인 진술서를 한참 동안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듯해도,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10월 말이 되면 최루탄 비에 온몸이 따가웠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고,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재심 개시 결정 통보를 받던 날, 박 씨는 그 고통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어떤 심리 상담을 받아도 트라우마가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이 과거의 고통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곁에서 함께한 변호인도 마음이 뭉클했다고 합니다. 박 씨는 이번 결정으로 더 많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민주화와 반독재를 외치던 스물셋 대학생의 굽힘 없는 삶이 40년 만에 닫혔던 법정의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