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성별 임금 격차…'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무게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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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한국이 OECD '성별 임금 격차' 통계에 포함된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최하위를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오명을 30년 넘게 쓰고 있지만, 이런 글을 쓸 때면 늘 반발이 뒤따라옵니다. '한국만큼 남녀평등한 나라가 어디 있냐'는 겁니다.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건 여성이 야근을 안 해서다', '여성은 힘들지 않으면서 월급을 적게 주는 서비스직에 종사해서 그런 거 아니냐', '육아휴직을 하니 월급이 적고, 그러니 임금 격차는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수치로 증명되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다국적 회계 감사 기업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매년 OECD 33개 국가를 대상으로 직장 내 성평등 달성 현황을 평가하는 여성 고용환경 지수(Women in Work Index. WIW)를 발표합니다. ①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② 경제활동 참여율 성별 격차 ③ 성별 임금 격차 ④ 여성 실업률 ⑤ 여성 정규직 고용률, 5가지 지표를 토대로 분석한 지수입니다. 올해도 이 지수를 발표한 PwC는 "여성 고용환경이 장기적으로는 개선되는 추세지만, 그 속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됐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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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오르긴 올랐습니다.

지난해 대비 0.4%p 증가했죠. 물가가 올라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가계 살림도 갈수록 어려워지니 일을 하지 않던 여성들이 일터로 뛰어든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 실업률도 0.2%p 상승했습니다. 경기 둔화에 따라 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였고, 시장에선 아예 노동 수요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경제활동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늘어난 반면, 일자리는 줄어드니 여성 실업률과 여성 정규직 고용률 지표는 모두 악화됐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 2024년 기준 한국의 여성 고용환경 지수(WIW)는 49.1점으로 33개 국가 중 32위를 차지했습니다.

'여성 고용환경 지수'가 처음 발표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최하위권을 여전히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직장 내 성평등'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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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입니다.

남성 노동자가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 노동자는 71만 원을 받는다는 것으로, 조사 대상국 중 격차가 가장 컸습니다.

시간당 임금으로 비교해 봐도 성별로 차이가 꽤 납니다. 2024년 남성의 시간당 임금은 2만 8천734원,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2만 363원이었습니다. (출처 :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통계」)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

성별 임금 격차는 고용률, 특히 '정규직 고용률'과 관련돼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남성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률은 88.3%인 반면, 여성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률은 75.2%에 그쳤습니다. 이제 막 일자리를 찾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의 정규직 고용률은 성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30대부터 격차가 벌어집니다.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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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일터로 돌아오거나 재취업하는 여성들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임금에서 저임금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향후 고임금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큰 30대 여성이 경력 단절을 피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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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유리천장'도 성별 임금 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KCGI자산운용이 국내 주요 상장기업 360곳의 성평등 지표를 분석한 결과, 여성 직원이 임원으로 선임되는 비율은 0.4%였습니다. 남성 직원의 임원 선임 비율은 1.6%였습니다. 남성 직원 1000명 중 16명이 임원으로 올라갈 때, 여성은 4명만 임원으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심지어 여성 사내이사가 한 명도 없는 기업은 80%가 넘었습니다.

"기업에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를"…성평등 임금공시제란?

성별 임금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선 '성평등 임금공시제(=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해야 한단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성평등가족부를 중심으로 연내 도입, 내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대통령 후보 시절)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를 도입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개선해 가겠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신년사
"또한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 부문에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본격 도입하며, 개별 기업들에 컨설팅을 지원하고 포상을 강화해 기업의 자율적 개선을 이끌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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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임금공시제가 도입되면 직종과 직급별로 성별 임금 격차가 공개될 뿐만 아니라 관리자, 임원의 성별도 공개됩니다. 한마디로

기업에게 공개 의무를 지워 사회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적극적 조치를 이끌어낸다는 겁니다.

정부는 성평등 지표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에게 컨설팅을 지원하고, 우수한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도 지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성평등 임금공시제>
기업(공공기관 포함)이 채용·근로·승진·퇴직 등에서 성별·고용 형태별 임금과 근로 실태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

물론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전이라고 해서, 정부가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5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기업 등이 고용노동부에 남녀 고용·관리자·임금 현황을 제출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 AA)'를 시행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내부 직원들에게는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공표되지 않아 그야말로 '고용노동부 보고용'이라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지난 4일 열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컨퍼런스: 직장 내 성평등–한국·북유럽 비교 관점>에서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연구본부장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로는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구 본부장은

"핵심은 공개되는 것인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투명성이 부족하다보니 사회적·조직적인 압력을 통해 현 상황과 지표를 개선하게 하고자 하는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고도 지적했습니다. 자료가 공개되지 않으니 당사자나 노조가 이의제기를 할 명분도, 그럴 방법도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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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공개에 그치지 않도록 '시정 조치' 연계해야"

구 본부장은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의 핵심은 '공개'"라고 강조했습니다. 데이터 공개로 기업의 자발적인 고용평등 개선 조치를 얼마나 유인하느냐가 제도 실효를 가른다는 것이죠. 구 본부장은 또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계획대로 잘 작동한다면,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돼 이를 통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의 인식이 개선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며 "기업 내부적으로 자발적인 개선에 나설 수 있고, 외부적으로도 기업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토대로 변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성별 임금 격차 해소의 첫걸음이 될 수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만약 데이터 공개가 그저 공시에 그친다면 시정 조치를 기대하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젠더 불평등 기업', '성별 임금 격차 최대 기업'이란 꼬리표가 붙어도, 기업 자체가 무관심하면 실효성이 없다는 거죠.

구 본부장은 "단순 임금 공개가 아니라 직무·직급별 임금을 세분화해서 공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한 데이터로는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과 발생 지점을 알 수 없으니, 직무와 직급별로 나눠서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구 본부장은 또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단순히 정보 수집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조의 이의제기권'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구 본부장은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직종·직급별 공시와 함께 노동자·노조의 이의제기권 및 협의·모니터링 의무를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노동자와 노조의 참여 없이는 내부 동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법률에 아예 노동자 참여를 못 박자는 취지입니다. 또 "공개에 그치지 않고 기업이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연계하는 것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투명한 공시와 노동자의 참여, 제도의 내재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법·제도와 현실 간 괴리를 해소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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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임금 공개로 차별의 원인을 짚을 수 있도록

원민경 장관은 3·8 여성의 날 기념 메시지에서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본격 도입하는 등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를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다시 한번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확인했습니다. 국회에서도 관련 준비가 한창입니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6일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지난 6일 기자회견)
이번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을 통해 세 가지 사항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첫째,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과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공시 항목을 구체적인 세부 항목으로 설계했습니다. 사업주에게 직종·직급·직무·근속연수·고용 형태별·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정부가 개선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습니다. 둘째, 노동자,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에게 임금정보 공개 청구권을 보장합니다.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한 임금 지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할 것입니다.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겠습니다. 셋째, 정부가 사업주에 공시 작성 교육 프로그램, 성별 임금 격차 개선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개선 우수 사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현장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평등한 사회가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곳곳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합니다. 실효성 있는 제도가 안착되지 않으면 변화는 느리게, 또 흐리게 체감됩니다.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실질적인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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