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부터 '빠다'까지 …김정은의 시식·시음 릴레이 [취재파일]

"'흰쌀밥에 고깃국' 대신 '버터·치즈' 공급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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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일, 평안북도 운전군 '삼광축산농장 조업식' (사진=조선중앙통신)

스위스 유학파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에멘탈 치즈 애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일, 역시 스위스 치즈로 유명한 라클렛 치즈(야채나 고기 위에 얹어 먹는 치즈)를 북한 지방 공장이 생산하는 현장이 북한 매체에 포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총비서는 이날 평안북도 운전군 삼광리에 있는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을 찾은 현장에서 라클렛 치즈와 체다 치즈 등 각종 유제품을 살펴보고 일부는 맛을 봤습니다. 버터 제품을 하나 까서 먹어 보고 특징을 물어보는 듯한 모습도 조선중앙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행한 간부들은 단체로 시식에 참가했고, 시찰 일정마다 김정은 의전을 맡아 온 현송월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유제품을 따라 간부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김정은은 이날 "앞으로는 어린이들뿐 아니라 소학교, 중학교 학생들은 물론 전체 주민들에게 우유와 버터, 치즈를 비롯한 각종 젖가공품과 고기 가공품들이 항상 차례지게(돌아가게) 하는 목표를 내세워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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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9일, 북한 황해남도 장연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 행사

최근 김정은의 현지 지도 일정을 보면 시식 또는 시음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함경남도 정평군 공장을 시찰하면서는 된장과 간장을 맛 봤고, 같은 달 19일 함경남도 신포시 공장을 찾아서는 소주를 시음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김주애도 소주병으로 보이는 곳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고, 김여정은 옆에서 부지런히 잔을 따랐습니다. 18일 황해남도 장연군 공장을 찾았을 때도 유사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정은은 소주로 추정되는 음료를 맛 본 뒤 '후'하고 숨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다른 간부들은 이날 주민들에게 맥주를 따라주느라 분주했습니다. 지방 공장 시찰 현장을 살펴보면 주류 외에 빵과 소세지가 전시된 장면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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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방발전 20×10' 이후 잦아진 시식 행사

'먹는 행사'가 잦아진 이유는 북한이 2024년 1월 발표한 '지방발전 20×10' 정책 때문입니다. '지방발전 20×10'은 매년 10개 도에서 2개 시·군을 선정해 20개씩 10년간 현대적인 지방 공장을 건설한다는 구상으로, 이에 따라 재작년부터 경공업 공장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있습니다. 내의·양말을 생산하는 옷 공장, 플라스틱 그릇 등 일용품을 생산하는 공장뿐 아니라 간장이나 된장 등 가공 식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경공업에 해당합니다. 새로 공장을 짓고 준공식을 개최하다보니 먹거리 관련 공장들에서 시음 및 시식 행사가 잊을만하면 다시 열리고 있는 겁니다. 김정은이 직접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평성즉석국수공장 등 즉석국수(라면)를 생산하는 곳들도 지방에 추가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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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김정은은 밀가루 생산을 늘려 식생활을 개선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제는 지방 공장 건설을 통해서 식생활의 '질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북러 밀착으로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대북 제재는 여전한 외부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추진이 가능한 식료품 공장 건설 등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도모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북 제재 하에서 정책 효과를 바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건설과 식료품 등 경공업 분야"라면서 "과거 경공업 정책과 비교하면 보다 실질적인 육성을 추진한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북중 접경 지역에는 북한산 식품들만 파는 매장이 있는데 그 종류가 전에 비해 다양해졌다는 것이 정 위원의 설명입니다. 지방 공장에 맥주 생산 공정이 설치된 배경으로는 재료 수급의 상대적 용이함, 부산물의 다목적 활용을 들 수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김영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맥주 생산 라인이 들어선 곳은 보리가 잘 나는 곳일 거라면서 "보리만 공급되면 맥주는 '꽝꽝' 나온다. 또 찌꺼기 같은 경우는 돼지 사료로 활용할 수 있어서 북한 입장에서 버릴 것이 없다. 순환 경제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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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방발전 20×10' 이후 잦아진 시식 행사

이렇게 첫 스타트는 끊었지만, 각지에 들어선 공장들이 준공식 이후 계속해서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인 만큼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더불어 북한 내부 식량 사정이 여전히 넉넉하지 않다는 점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3월에도 유엔 식량 농업기구에 의해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선정됐습니다. 19년 연속입니다. 올해도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성적 식량난 속에 '언 발에 오줌 누기' 혹은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방식으로 식생활 개선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신문은 당장 지난 1일에도 "누가 보건 말건 또 그것이 크든 작든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이바지될 수만 있다면 한 치의 땅도 외면하지 말아야 진짜 애국농민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은은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는 것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평생 염원이었다고 2019년 밝힌 바 있는데, 노동신문의 보도에서 추정할 수 있듯 북한의 쌀독은 여전히 채워야 하는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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