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올해 예산 얘기가 거의 없었어요. 국회 출입하면서 이런 적이 또 있었나 싶네요."
인사 발령으로 새롭게 꾸려진 2025년 12월 SBS 탐사기획팀 첫 회의. 인사 발령 전 국회를 출입했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초유의 계엄 후폭풍, 그렇게 이어진 탄핵과 대선까지, 2025년은 치열한 정쟁으로 얼룩졌습니다.
입법과 더불어 국회의 가장 큰 임무인 '예산 심사'는 정치인들 입에서 별로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728조 원'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됐지만, 국회는 늘 안녕하지 못했고 예산 심사는 그렇게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여러 차례 예산 회의록 전수분석을 통해 국회를 감시해 왔던 SBS 취재팀.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안 분석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심사 감시 기능이 유독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난해 정기 국회, 즉, 예산 국회 당시 347개, 1만 7,111쪽에 달하는 방대한 회의록을 전수분석했고,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탐사기획팀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실 심사, 졸속 심사,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예산은 그 정점을 찍었다."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권한, 아시다시피 국회에 있습니다. 헌법 제54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보통 이를 국회의 예산안 '수정권'이라고 합니다.
8월 말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뺄 것 빼고, 넣을 것 넣고, 이렇게 수정해서, 12월 초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
합니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줄이는 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 늘릴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가운데, 특정 사업을 증액하고 새로운 예산을 편성하려면 정부 동의가 필요합니다. 헌법 제57조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국회가 감액한 범위 안에서 예산 증액이 가능하고, 이 역시도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
되고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 정부는 총지출 728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국회는 9조 3,518억 원을 줄이고 9조 2250억 원을 늘렸습니다. 결과적으로 727.9조 원 규모의 예산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니까,
국회가 원하는 예산을 늘리거나 아예 새로 만들고 싶다면, 또 그 만큼을 줄여줘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탐사기획팀은 지금까지 보도를 통해, 의원들이 국회에서 늘린 사업과 예산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그게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은 바로 '감액'입니다.
그러면,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어떤 걸 감액했을까요.
먼저, 전문가와 함께 국회의 감액 내용을 살펴 보고, 이를 지렛대 삼아 대안을 고민해 보려 합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을 만났습니다.
일단, SBS 탐사기획팀이
올해 국회에서 감액된 예산을 분석했습니다. 올해 국회에서 감액한 10대장
입니다.
앞서 국회가 9조 원 넘게 감액했다고 설명 드렸는데, 정확히 말하면 4.3조 원을 감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조직 개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환경부가 '기후환경에너지부'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통상부'로 개편됐는데, 이러면 옛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에너지 예산은 환경부로 '이관'됩니다. 결과적으로 산업통상부 예산은 '감액'되고, 기후환경에너지부 예산은 '증액'되지만, 결과적으로 예산이 한쪽으로 옮겨졌을 뿐입니다.
이런 조직 개편으로 생기는 감액과 증액, 즉, '이관' 변수를 빼고 계산하면, 국회에서 실질적으로 감액한 액수는 4.3조 원
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감액 10대장'에서만 3조 원이 넘으니까, 이들 예산이 전체 감액을 사실상 결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국회가 분산된 여러 사업을 미세조정을 한 게 아니라, 일부 대형 사업을 골라 일괄적이고 대폭적인 조정의 형태로 나타낸 셈입니다.
이상민 위원은 이를 '무늬만 감액'이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2,249억 원이 감액된 기초연금지급 사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Q. 기초연금 감액, 어떤 점이 '무늬만 감액'이라고 볼 수 있나요?
A. 국회가 감액했다고 하면, 그래도 국민 세금 아끼려고 정부가 예산을 줄였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가령, 기초연금은 법적 의무 지출이에요. 예산 없으면 기초연금 안 주나요? 아니잖아요. 기초연금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은 받는 거고, 못 받는 어르신은 못 받는 거잖아요. 변하는 건 없습니다. 기초연금 총 지출액 추계만 달라지는 거죠. 달리 말하면,
실질 감액이 아니라, 사업 지출액 추계만 줄인 감액
이란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부가 국회에 주는 '감액 선물'과도 같아요.
Q. 감액을 선물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A.
기획예산처가 이걸 깎는 걸 동의해주면, 자연스럽게 국회의원들이 증액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거죠.
저는 이걸 기획예산처가 국회를 길들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감액 선물을 많이 줄 수도 있고, 혹은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결국, 감액을 통해 '증액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국회는 증액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이상민 위원의 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저희 탐사기획팀이 지금까지 보도한 대로, 증액 심사는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고, 결국, 이건 여야 교섭단체의 정치적 '거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Q. 올해는 감액 논의는 있었지만, 증액 논의가 없었잖아요?
A. 올해 예산 심사는 정말 퇴행적이었습니다.
감액 심사 한 번 하고, 안건을 재논의하지 않고 종결해 버리거든요.
증액 논의 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액 논의 하지 않는 잘못된 관행을 좀 없애자고 해서, 최근에는 증액 논의를 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다시 증액 논의를 1초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감액 심사 한 번 하더니 얼마를 감액했는지 보고하지도 않고, 여야 간사 협의로 넘기겠다며 동의를 또 구하지도 않은 채 회의가 끝나 버렸어요.
Q. 예산 심사한 국회의원도 내용을 모른다는 얘기네요?
A. 그렇죠. 예결위원조차 모를 수 있는 거예요.
사실상 이번 예산안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어요. 우리 후손도 도대체 26년도 예산안은 국회가 이를 어떻게 논의됐는지 누구도 모르게 된 셈입니다.
Q. 예산 심사 제대로 안 하고, 결국, 여야 원내 지도부의 거래를 통해 예산 증액이 이뤄진 셈이네요.
A. 사실 국회의원들도 공개적으로 국민들이 보는 곳에서 예산안을 논의하고 싶지 않아해요.
국민이 안 보이는 곳에서, 그러니까 밀실에서 주고 받는 거죠. 저는 이걸 '바터(barter)'라고 표현합니다. 만일 바터 과정이 국민들에게 공개가 되면 불편해 할 사람이 많잖아요.
가령, 다른 예산을 따내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예산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국민들이 세세히 알게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Q. 이른바 '소소위'를 말하는 거겠네요.
A. 소소위라고 보통 언론에서 말하긴 하는데, 저는 소소위도 좋은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소위는 마치 어떤 공식적인 회의체라는 이미지를 주잖아요.
소소위를 정확히 말하면, 여야 교섭단체 간 비공개 협상 테이블을 뜻합니다.
지난해 12월 2일, 김병기 민주당 당시 원내대표(오른쪽)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6년도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밀실 안에서 '바터'를 위한 흥정이 거리낌 없이 진행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지역성 사업'이 있습니다. 지역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 예산을 따오고, 이를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올해 예산 심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Q. SBS 탐사기획팀이 앞서 보도했지만, 국회가 새로 신설한 예산 가운데, 지역성 예산이 절반이 넘은 걸로 분석됐습니다.
A. 국회의원은 지역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국민의 대표잖아요.
지역 대표성도 있기 때문에, 지역 예산을 증액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늘릴 만한 예산이었는가, 이건 또 별개 문제라는 겁니다. 가령, 지역 도로와 지역 철도에 대한 증액 의견을 내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증액이 된다 쳐요.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얼마나 될까요. 무슨 소리냐면, 철도 예산이 100억 원이 있어요. 그런데 특정 의원이 증액 요구를 해서 120억 원으로 증액이 됐다고 쳐요. 그렇다고 해서, 철도를 세 줄로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철길을 티타늄으로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 계획된 그 도로와 철도를 건설할 뿐이잖아요.
Q.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네요.
A. 그렇습니다.
그렇게 증액된 돈은 어떻게 되느냐, 대부분 불용으로 남습니다. 결국, 지역구 의원들이 "내가 지역을 위해 국비 얼마 끌어왔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업적으로 과시하는, 이른바 '현수막 예산'인 셈입니다.
지역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의원 개인이 단순히 현수막을 달기 위해서 증액한 사례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그게 왜 증액이 돼야 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걸 어디서 하나요? 밀실에서 합니다.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소소위'라는 비공개 밀실 협의장에서요. 예산 필요성에 의해 증액이 됐다기보다는, 의원들이 나눠 갖는 증액 예산이라고 짐작할 수가 있는 거죠.
Q. 결국, 지역 예산 챙기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비효율성이 문제인 셈이네요.
A. 그렇습니다. 지역구 챙기기 예산의 폐해는,
한정된 재원이 정책적 우선순위가 아니라 정치력에 의해 우선순위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고, 결국, 예산 심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예산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이고요.
결국, 정리하면, '무늬만 감액'으로 국회의원들이 '증액의 공간'을 만들고, 대부분 증액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거래를 통해 증액을 주고 받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올해는 그런 관행이 반복되다 못해 퇴행했다는 게 김 위원의 진단입니다. '2026년 예산안은 영구 미제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Q. 이런 관행,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대안이 있을까요?
A. 국회 예산안 심사가 졸속이라는 비판은 굉장히 오래됐죠. 대안 논의가 또 왜 없었겠어요. 다만, 저는 물리적인 한계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일단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해요. 아무리 좋은 대안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Q. 보통 예산 심사를 한 달 정도 하잖아요.
A. 매년 9월에 시작되는 정기 국회의 별칭은 '예산 국회'잖아요. 9월에 시작됐으면, 바로 9월부터 논의를 하고, 최소 10월부터는 심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10월에는 국정감사를 합니다. 국감 끝나고, 추석 끝나면 11월이에요. 이때 예산안 심의가 들어가거든요. 헌법에 따라서 12월 2일날까지는 예산안 심의를 마쳐야 되는데, 그러면 딱 한 달이잖요.
예산안 심사를 할 그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한 달 가지고는 이건 예산안 심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Q. 소소위 문제도 풀어야 할 것 같아요.
A. 공개 원칙 역시 강조해야 합니다. 최소한 기록은 해야 됩니다. 재정 정보는 국민에게 올바르게 전달돼야 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이른바 소소위를 기록해서, 10년 뒤에 최소한 우리 후손이라도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공개'이니까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물리적으로 짧은 예산 심의 시간을 손 보는 게 첫 단추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회가 시간에 쫓기다 보면, 심사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국회가 지금부터라도 심의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이렇게 SBS 탐사기획팀은 1만 7111쪽에 달하는 방대한 회의록을 전수 분석한, 두 달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언론 책임도 있음을 반성합니다. 계엄 후폭풍에 휩싸인 2025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례적 정치 환경 속에서 언론 역시 예산 감시보다 정무 취재에 집중한 것도 사실입니다. 당내 역학 구도, 여기서 생기는 계파 간의 파열음, 또 그렇게 바뀌는 권력 지형에 취재의 우선순위가 있었습니다.
국회가 예산 심의 과정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언론 역시 책임의 지분이 있음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앞으로도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을 꼼꼼히 감시하는 작업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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