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학자 놈 촘스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언어학자 놈 촘스키(97)가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분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추가로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가 추가로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 문서 수백만 건 중에는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욱 깊었음을 시사하는 자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2019년 2월 말에 엡스타인이 변호사 겸 언론대응 담당자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촘스키로부터 받은 조언이라고 돼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이는 엡스타인의 주장으로, 촘스키가 이메일 등으로 실제로 이런 조언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엡스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촘스키는 "당신(엡스타인)이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끔찍한 취급"을 헤쳐나가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시해버리는 것"이라고 엡스타인에게 조언했습니다.
촘스키는 "여성 학대에 대한 히스테리가 너무나 커져서 그런 주장을 의심하는 것조차 살인보다 더 큰 범죄로 여겨지는 지경에 이른 지금은 특히 그렇다"며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인 이유를 설명했다는 게 엡스타인 이메일에 포함된 전언 내용입니다.
또 가디언에 따르면 촘스키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우익 인사 스티브 배넌에게 "얘기할 것이 많다"며 만나서 안면을 트자고 제안하면서 엡스타인으로부터 배넌의 연락처를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과학인용색인(SCI), 사회과학인용색인(SSCI) 등의 피인용 집계에서 드러나는 학문적 영향력에서 촘스키는 인류 역사상 뛰어난 석학으로 꼽히며, 생존 인물 중에는 비견할만한 인물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의 업적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등 다른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전산학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촘스키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2002년 은퇴한 후 명예교수가 됐으며, 아울러 2017년 가을 학기부터는 애리조나대 언어학과에 계관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다만 2023년 10월부터 의학적 사유에 따른 무급휴직 상태입니다.
그는 수십 년간 정치평론 활동을 통해 진보진영을 상징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도 명성을 쌓았습니다.
촘스키와 엡스타인의 친분관계를 시사하는 내용은 앞서 작년 11월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 자료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여기에는 촘스키가 엡스타인과 "정기적 접촉"을 유지한 것이 "매우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는 전언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촘스키는 아파트 구입과 자녀에 대한 재산 분배 등 재무 관련 조언을 엡스타인으로부터 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촘스키의 현 부인인 발레리아 워서먼 촘스키가 엡스타인의 부하직원에게 촘스키의 언어학 관련 사업 시행에 도움을 달라며 2만 달러(2천900만 원)짜리 수표를 발송하도록 했다는 내용도 엡스타인 파일에 포함됐습니다.
최근 공개된 이메일 기록을 보면 2016년에 엡스타인과 촘스키 부부는 만날 계획을 세웠으며, 그 후 엡스타인은 촘스키에게 이메일을 보내 "늘 그렇듯 즐거웠습니다. 뉴욕이나 카리브해에 오시는지요? 음식도 즐기시고요"라고 썼습니다.
촘스키는 답장에서 "저희도 정말 즐거웠습니다"라며 "발레리아는 항상 뉴욕을 좋아합니다. 저는 카리브해 섬에 대한 상상에 잠기곤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2016년의 다른 시점에 엡스타인은 촘스키에게 "언제든지 시간이 된다"며 뉴욕시에서 만나자고 제안하면서 "우리 말고 시내(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딴 데 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우디만 빼고요"라며 다시 모임을 가지자고 말했습니다.
촘스키는 엡스타인과 "앨런네"(the Allens)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 멋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디'라는 이름과 '앨런'이라는 성을 조합하면 엡스타인과 촘스키가 유명 영화인 우디 앨런과 그의 아내 순이 프레빈과 모임 약속을 잡으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후 엡스타인이 유전자검사업체 '23 앤드 미'로부터 받은 2016년 주문발송 이메일에는 유전자검사 키트를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 부부에게 발송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촘스키 부부도 엡스타인으로부터 이런 키트를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도 공개됐습니다.
엡스타인의 마지막 여자친구로 알려진 카리나 슐리악이 신원이 가림처리된 제3자에게 보낸 2017년 봄 이메일에는 슐리액과 엡스타인이 유전자검사 키트 두 세트를 촘스키와 그의 아내 발레리아 와서만 촘스키에게 보내려고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벨라루스 출신 치과의사인 슐리악은 엡스타인의 유산 중 3분의 1 이상을 받기로 유언장에 지정된 인물로 드러나 최근 화제가 됐습니다.
자산관리 전문 매체 '웰스어드바이저'는 엡스타인이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2019년 8월 8일에 서명한 유언장에서 약 2억 8천800만 달러(4천180억 원)로 추산한 재산 중 약 1억 달러(1천450억 원)를 슐리악에게 남겼다고 전했습니다.
슐리악의 몫은 유언장에 언급된 최소 44명의 피상속인 중 액수가 가장 큽니다.
엡스타인은 유언장에서 연년생 동생인 마크 엡스타인, 그리고 전 연인이며 미성년자 성매매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에게는 슐리악 몫의 10분의 1에 불과한 1천만 달러(145억 원)씩만 남겼습니다.
슐리악 몫으로 지정된 유산에는 현금 5천만 달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리틀세인트제임스 섬,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의 타운하우스, 33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 반지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이 반지가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유언장에 자필로 추가로 써넣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엡스타인이 남긴 재산 중 많은 부분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세금 납부 등으로 나가거나 매각됐기 때문에 유언장 내용대로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최근 집계에 따르면 남아 있는 유산 액수는 1억 2천700만 달러(1천840억 원)이라고 웰스어드바이저는 전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