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버려진 집, 저기도 버려진 집" [취재파일]

버려진 집, 세계 공통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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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일이다. 부산으로 출장을 떠났다. 인구 감소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4박 5일 일정으로 현장을 돌았다. 첫 취재지는 부산 영도였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구 감소로 사람이 떠난 자리에, 오랜 시간 방치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녹이 잔뜩 슬어 언제 쓰러질지 모를 철문 사이로 들여다본 내부에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각종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도 심했다. '이곳엔 밤에는 오기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네에 이렇게 한두 곳의 폐가가 생기면, 그 지역은 순식간에 슬럼화된다. 단순한 미관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취재를 하며 수치들을 접하고 나서는 더 놀랐다. 부산 전체의 빈집은 약 11만4천 채. 부산 전체 주택의 9%에 달한다. 부산 동구만 해도 폐가가 1,200곳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부산이 전국 광역시 가운데 빈집 비율이 가장 높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전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전국에 있는 주인 없는 빈집은 약 153만4천 채. 전체 주택의 7.9%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도시로의 이동, 상속 후 방치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뉴스는 이제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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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의 한 골목에 방치된 건물들

 얼마 전부터 일본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빈집 1천만 채 시대'에 들어섰다는 기사다. 일본 정부가 2023년 실시한 주택·토지 통계조사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전역의 빈집은 약 900만 채로 집계됐다. 매년 약 60만 채씩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는 이미 1천만 채를 넘어섰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문제는 지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쿄에서도 주택 10채 가운데 1채가 빈집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젊은 세대의 대도시 집중, 지방 인구 유출, 고령 집주인의 사망 이후 상속이나 매각이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빈집 급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은 어떨까. 미국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에서 빈집이 급증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시카고 같은 도시들이 대표적이다. 폐광·폐공장 주변 소도시와 중서부 농촌 지역에서도 빈집과 폐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대형 산불이 잇따른 캘리포니아, 홍수 피해로 복구가 어려운 지역들이다. 복구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귀환을 포기하면서, 집은 그대로 방치됐다. 일본이 고령화와 상속 포기가 빈집의 주원인이라면, 미국은 경제 붕괴와 산업 쇠퇴가 더 큰 원인이다. 한국은 상속 후 방치와 재개발 대기가 주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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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산불 현장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덴마크에서는 빈집을 주로 농촌이나 고령화된 마을에서 볼 수 있다. 원인은 역시 인구 유출이다. 다만 덴마크는 빈집을 '관리'하기보다 '정리'하는 데 방점을 둔다. 지자체가 주택을 매입해 강제 철거하는 경우도 흔하다. 빈집을 오래 방치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분명하다. 독일은 조금 다르다. 서독 지역은 오히려 주택이 부족해 빈집을 찾기 어렵다. 반면 옛 동독 지역은 상황이 정반대다. 통일 이후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젊은 층이 서부로 이동했고, 그 결과 빈집과 폐아파트 단지가 대거 생겨났다. 독일 정부는 이들 주택을 철거하거나 공원으로 조성하고, 일부는 사회주택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해외 사례를 취재하며 눈길을 끈 제도가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 중인 '아키야 뱅크'다. 빈집 정보를 공개해 매각이나 임대를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이다. 일부 주택은 무상 제공까지 하며 활용을 유도한다. 이름에 '은행'이 들어가지만 금융기관은 아니다. 버려진 집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겠다는 정책적 시도다. 성과도 있다. 완전히 방치된 빈집은 줄었고, 실제로 이주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빈집 문제는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버려진 집이 늘어날수록, 도시는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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