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힐링템'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중국 직구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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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르는 연기, 스며드는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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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막대 끝에 불을 붙인다. 주황빛 불씨가 천천히 타들어가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라벤더, 백단향, 샌달우드. 방 안 가득 번지는 이국적인 향. 인센스 스틱이다. 명상할 때, 요가할 때, 퇴근 후 지친 몸을 누일 때. SNS에서 '힐링템'으로 입소문이 났다. 요가원에서 수업 전후 명상할 때 쓰이고, 지인 선물로도 자주 오간다. 기자도 몇 번 받아본 적 있다. 테무에서 3,000원이면 100개를 살 수 있으니 부담도 없다.

밀폐된 원룸에서 이 향을 피우며 하루의 긴장을 푸는 사람들. 그들이 들이마시는 연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중국산 제품들을 수거해 검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CMIT 498mg/kg, MIT 169mg/kg. 합치면 최고 검출량은 667mg/kg. 2011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그 원인 물질이었다. 당시 고농도 제품으로 꼽힌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의 CMIT/MIT 검출량은 150mg/kg이었다. 테무발 인센스 스틱은 그 4배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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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메이트 검출량의 4배

CMIT와 MIT.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 이름은 낯설어도 이 물질이 남긴 상처는 생생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2023년 5월 기준 7,843건. 그중 사망자만 1천 명이 넘는다.

조용성 서경대 나노화학생명공학과 교수는 이 물질의 위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MIT나 CMIT 같은 경우는 폐가 심한 경우에 딱딱해지는 폐섬유화가 나타날 수 있고, 천식이나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굉장히 강한 호흡기 독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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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평가연구소의 동물실험에서도 CMIT/MIT를 반복 투여한 쥐의 폐에서 염증성 손상과 섬유화가 확인됐다. 2022년 국제학술지 'Environment International'에 게재된 연구는 이 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폐까지 도달해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했다.

국내에서는 이 물질이 방향제에 단 1mg도 들어가선 안 된다. 사용 자체가 금지된 물질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직구한 '힐링템'에는 1kg당 수백 mg씩 들어 있었다. 밀폐된 방에서 이 향을 피우는 건, 사실상 가습기 살균제를 기체로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94%가 발암물질인 '순은 팔찌'

'순은'이라며 판매된 팔찌의 성분을 분석했더니, 은은 없었다. 대신 성분의 94%가 카드뮴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매일 피부에 닿는 장신구가 발암물질 덩어리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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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네일아트용 접착제에서는 아크릴로니트릴이 검출됐다. 인조 손톱을 붙이거나 속눈썹을 연장하기 위해 젊은 여성들이 미용실이나 집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다.

아크릴로니트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024년 7월 1군 발암물질로 상향 조정한 물질이다. 폐암 유발 근거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조용성 교수는 이 물질의 위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출됐을 경우 두통이나 어지러움, 호흡곤란이 나타나고, 심하면 의식 상실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폐암, 뇌암과 관련됐다는 논문도 보고되고 있고, 생식독성도 가지고 있는 굉장히 독성이 강한 물질입니다."

중국산 차량용 방향제에서는 포름알데히드가, 본드와 접착제에서는 뇌 손상을 유발하는 톨루엔이 제품 무게의 절반 넘게 검출되기도 했다.

4배로 뛴 위반 건수, 손 묶인 정부

해외 직구 제품의 안전기준 위반 적발 건수는 전년 대비 4배 이상 급증했다. 알리와 테무를 통한 직구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문제는 정부의 손이 묶여 있다는 점이다. 고기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 팀장은 규제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해외 직구의 경우는 화학제품안전관리법상 제조·수입자가 국내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 법 적용이 힘듭니다. 수입 제품을 해외 직구로 구매할 경우, 소비자는 이러한 유해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제조·수입자가 해외에 있고, 알리·테무 같은 유통사도 해외에 있다 보니까 정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고, 법적인 처분을 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제조·수입되는 생활화학제품은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라 43개 품목별로 엄격한 함유 물질 기준이 적용된다.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까지 품목별로 안전기준을 정해 관리하는 수준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하고 꼼꼼한 편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른 뒤 만든 규제다.

그러나 해외 직구 제품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조자도, 판매자도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적합 제품을 찾아내 플랫폼에 판매 차단을 '요청'하고, 관세청에 반입 차단을 '협조 요청'하는 것뿐이다. 강제할 권한이 없다.

유럽도 금지 못한 물질, 한국만 금지

CMIT/MIT에 대한 규제 수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유럽연합(EU)은 화장품에 15ppm(0.0015%) 이하로 함량을 제한하고 있다. 피부에 직접 바르는 제품 기준이다.

한국은 다르다. 생활화학제품, 즉 직접 피부에 바르지 않는 방향제나 세정제에도 이 물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트라우마가 만든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이다.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직구 제품을 통해 유해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 방향제에서 검출된 CMIT/MIT 667mg/kg은 EU 화장품 기준 15ppm의 40배가 넘는 수치다.

안전한 제품, 어떻게 구별하나

정부는 올해 조사 대상을 4천250개로 늘려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유해 제품이 국내에 유통된 뒤에야 사후 적발이 이뤄지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고기오 팀장은 국내 제품과 해외 직구 제품을 구별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제품은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라 안전기준 적합 확인을 받고, 신고번호를 받은 뒤 제품 라벨에 표기하고 유통하도록 돼 있습니다. 제품을 구매하실 때 안전기준 적합 확인 마크가 있는지, 신고번호가 있는지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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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의가 필요한 제품군이 있다. 인센스 스틱이나 차량용 방향제처럼 호흡기로 직접 들어가는 제품, 네일 글루나 장신구처럼 피부에 닿는 제품이다. 이런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 때는 성분 표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성분 표시가 아예 없거나 중국어로만 적혀 있다면 피하는 게 안전하다.

3천 원짜리 '힐링템'이 가져다주는 건 휴식이 아닐 수도 있다. 과거 이 나라를 뒤흔든 참사의 원인 물질이, 이름만 바꿔 다시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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