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파바이러스 유입 방지' 검역 강화한 태국 수도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
요즘 태국의 일부 공항에서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입국장 한쪽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일상 속으로 흡수되면서 공항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장비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일부 국가 공항에서는 다시 이 기계로 모든 입국 승객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니파 바이러스다.
아시아 주요 언론을 종합하면, 인도 웨스트벵갈주 콜카타에서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되는 니파 바이러스 확진자가 확인되면서 주변국 공항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확진자는 2명. 인도 보건 당국은 두 사람 모두 병원 직원이라고 밝혔다. 일부 현지 언론은 이들이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 환자는 니파 바이러스 검사를 받기도 전에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 당국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사망 환자와 접촉한 180명은 이미 검사를 받았고, 이 가운데 근접 접촉자로 분류된 20명은 별도 시설에서 관리 중이다. 아직 추가 확진 소식은 없지만, 대응 수위만 놓고 보면 각국의 긴장감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태국의 움직임이 빠르다. 인도 웨스트벵갈 지역과 항공편이 오가는 돈므앙 공항을 포함해 주요 공항 3곳에 열화상 검사기를 다시 설치했다. 네팔 역시 카트만두 국제공항과 국경 지역에 검역 장비를 배치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한발 더 나아가 인도발 여행객을 상대로 체온 측정은 물론 건강 상태 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공항 직원이 직접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했다.
오늘(1월 30일)자 로이터 통신을 보면 파키스탄 국경 보건 당국의 긴장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항과 항구, 국경을 통과하는 모든 여행객은 발열 검사를 받아야 하며, 최근 21일간 니파 바이러스 발생 지역에 체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도와 파키스탄 간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양국 간 왕래가 많지 않음에도, 파키스탄 당국은 방역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타이완은 니파 바이러스를 최고 위험 단계인 5급 전염병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2024년 제1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했다.
니파 바이러스는 이름은 낯설지만 새로운 바이러스는 아니다. 1998년 말레이시아의 돼지 농장에서 처음 확인됐고, 2023년 9월에도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서 감염자 2명이 숨지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 바이러스가 세계 보건 당국을 긴장시키는 이유는 분명하다. 치사율이 최대 75%에 이르고,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감염 초기 증상은 고열과 두통, 어지럼증, 근육통, 인후통 등으로 감기나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후다. 일부 환자에서는 뇌염으로 진행되며 혼란, 발작, 혼수 상태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잠복기도 짧게는 4일, 길게는 21일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추적과 차단이 쉽지 않다.
니파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는 과일박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박쥐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대추야자 수액이나 과일 섭취를 피할 것을 권고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주스를 끓이거나 껍질을 제거해 위험을 낮추라고 조언한다.
감염자의 혈액, 소변, 타액 등 체액과의 접촉을 통해 사람 간 전파도 가능하다. 실제로 의료 환경에서 의료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현재 니파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결국 예방이 최선이다.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눈·코·입 등 점막 부위를 만지지 않으며,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는 기본 수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공항 검역’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익숙해졌고, 동시에 쉽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등장한 열화상 검사기는 단순한 방역 장비가 아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언제든 국경을 넘어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니파 바이러스 사태가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는 여전히 새로운 감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