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해 구조물 1기 '이동'…'기업 자율'로 포장한 중국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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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웨이하이 해사국 홈페이지 공지글

중국 외교부가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내에 설치해 온 대형 구조물 3기 가운데 1기를 잠정조치수역 밖으로 이동 중이라고 그제(27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중국의 발표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가 중국 특유의 외교 화법과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야간에 시작된 이동…'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거론돼온 핵심 시설

지난 26일 중국 웨이하이 해사국 공지에 따르면, 잠정조치수역 내 설치된 '아틀란틱 암스테르담(Atlantic Amsterdam)' 플랫폼, 즉 '관리 시설'이 27일 저녁부터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우리 시각 2월 1일 새벽 1시쯤 잠정조치수역 바깥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보시는 CG는 해사국 공지 좌표를 기준으로 그린 예상 이동 경로입니다. (현 위치는 '이동 전'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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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해 '관리 구조물' 이동 예상 경로

이 시설은 석유시추선을 개조한 반(半)고정식 구조물 형태로, 헬기 착륙장과 상주 인력 수용이 가능한 설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평시에는 민간 목적이라 주장해도, 상황에 따라 군사적 용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 돼왔습니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은 "양식시설보다는 관리시설을 더 염려해왔던 게 사실"이라며, "관리시설은 반고정식이라 개조만 잘하면 사람도 살 수 있고, 전력이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인프라만 있으면 바다에 굉장히 많은 센서를 깔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성과인데…"기업이 한 일"이라는 중국

이번 조치는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여러 실무 협의가 결실을 본 사례로 해석됩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 7일 "(중국 측이) 관리하는 시설은 철수할게라고 해서 아마 옮기게 될 것 같다"고 언급한 뒤 약 20일 만에 실제 이동이 시작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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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 외교부의 반응은 묘합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7일 마치 제3자의 일을 전달하듯 "중국 측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동 작업을 실시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민감 수역에서 시추선급 구조물을 이동시키는 조치를 중국 기업이 국가 승인 없이 '자율'로 결정한 것이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가 관여했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주장해 온 논리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기업의 판단'으로 포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방식은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에서 이른바 '한한령'으로 불린 제한 조치가 나타났을 때 대응 패턴과도 유사합니다. 당시에도 중국은 정부가 직접 '금지령'을 내렸다고 인정하기보다, 민간·시장 차원의 움직임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책임 소재를 흐렸습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향후 관계가 악화할 경우에도 중국이 필요에 따라 '기업 판단' 논리를 앞세워 재설치·추가 설치 등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이번 이동 조치와 별개로, 서해 양식 시설을 둘러싼 자신들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했습니다. 궈자쿤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서해 양식 시설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국은 남은 양식시설들(선란-1호, 2호)에 대해서도 '민간 어업 시설이므로 한중 어업협정이나 유엔해양법협약 위반이 아니며, 따라서 잠정조치수역 내 존치는 무방하다'는 기존 논리를 고수하겠다고 사실상 선언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는 "중국 기업이 자율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그제(27일) 발표는 중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발표한 건 명확한 팩트"라며 실질적인 외교적 진전임을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남은 양식시설 2기에 대해서도 일방적 설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중국 측과 협의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중국이 전향적으로 호응할지는 미지수입니다.

1기 이동은 "의미 있는 진전"...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번 서해 구조물 1기의 이동은 한중 관계 복원의 신호탄으로서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하지만 남은 구조물들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기까지는 여전히 험난한 협상이 남아 있습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이 지난달 공개한 위성사진을 봐도, 서해 잠정조치수역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이번에 이동하는 '관리시설'외에도 (사진상 14번 사진), 선란 1호·2호(15번, 16번 사진)가 여전히 잠정조치수역 안에, 그리고 그 외 13개의 부표는 잠정조치수역 안팎에 계속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1번부터 13번까지가 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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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적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74조 3항은 EEZ 경계가 미획정된 수역에서 당사국들이 최종 합의를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는 이른바 '자제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양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일방적 구조물 설치·운용이 이 조항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CSIS는 서해 내 시설물 설치가 남·동중국해에서 보여준 중국의 수법, 즉 이른바 '점진적 주권 확장' 시도와 유사하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양식이라는 민간의 탈을 쓰고 서해에서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고착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번 서해 구조물 1기의 이동 조치는 '완성'이 아닌 '협상의 시작'입니다. 중국이 전향적인 태도로 변화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나머지 대형 구조물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가 핵심 관건입니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중에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채널 협의를 계속 이어간단 방침입니다. 과연 정부가 '기업의 자율'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운 중국을 상대로 남은 대형 구조물들의 문제, 경계 획정 문제까지 실질적 진전을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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