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패키지를 오는 노동절(5월 1일)까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제정법인 만큼 지난 21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는 해당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가 열리는 시간, 민주노총은 국회 담장 밖에서 해당 법안을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법은 이재명 정부 1호 노동법안으로 추진을 약속했던 법인 데다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인데 왜 민주노총이 반대에 나섰을까.
'미끄러운 경사로'민주노총이 걱정하는 건 '미끄러운 경사로'다. 한번 발을 들였다가 근로조건이 끝없이 악화되는 길로 미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노동법은 제정될 때부터 근로자냐 자영업자냐 이분법적 구조를 택해왔다. 근로자로 인정되면 노동법이 제공하는 법적 보호의 패키지를 제공하고, 근로자로 인정되지 못하면(자영업자라고 분류되면) 법적 보호를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이번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도입되면 근로자냐 자영업자의 틀을 깨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일하는 사람이라는 제3의 영역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택배기사나 화물차주 같은 특수고용직, 음식 플랫폼 배달라이더 같은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나 1인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이들은 87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못해 노동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권리 밖 노동자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겠다며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추진하려고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함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원래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할 이들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제3의 영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최저임금과 같은 임금, 주52시간 같은 근로시간, 해고 제한 등 노동법적 보호를 받는다. 반면 일하는 사람의 경우 임금, 근로시간, 해고와 같은 노동법의 주된 보호는 빠진 채 차별 금지, 성희롱과 괴롭힘 금지, 사회보험, 표준계약서 제공 등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의 보호를 받는다. 민주노총이 우려하는 건 임금, 근로시간, 해고 등 노동법적 보호에서 제외된 일하는 사람이 양산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이른바 '프레카리아트(정규직 근로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 아래의 불안정 노동 계급)'로 고착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이번엔 통과 가능할까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논의는 오래됐다.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0년대 중반의 특수고용직 논의부터 시작됐다.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전후에 논의가 활발해졌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택배기사나 플랫폼 배달라이더 같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형 노동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처음에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장철민 의원 발의)'을 통해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도입하려 하다가 특수고용직 등을 포괄하는 '일하는 시민 기본법'으로 확장해 입법이 추진됐다. 명칭은 일하는 시민 기본법, 일터 기본법,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으로 변화해 온 법안들은 발의는 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이때도 민주노총의 반대가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 [취재파일] '플랫폼법' 둘러싼 각계 입장…선의와 현실 사이 (2021. 3. 7.)
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의 일환으로 '노동약자 지원법(임이자 의원 발의)'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안의 발의됐다. 특고, 플랫폼노동 등 권리 밖 노동자에 대한 보호 법안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모두 정부여당일 때 추진하려 했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이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못 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가장 큰 반대자는 민주노총이다.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에게까지 기업의 의무와 책임이 늘어나는 만큼 경영계는 이 법을 환영할 리 없지만, 경총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는 건 자제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경우 큰 틀에서 찬성하고 각론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당과 긴밀하게 정책협약을 맺어 함께하는 데다, 법에서 규정하는 플랫폼노동, 프리랜서들의 공제회도 조직사업으로 추진해 온 면이 있다. 결국, 노동부와 민주당이 추진하고 국민의힘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아온 이 법안이 몇 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에는 민주노총의 비토가 작용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
해당 법안 추진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들이 나오자 노동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해 'ILO, EU 등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하지만 노동부의 설명대로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우선 ILO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플랫폼노동 보호에 대한 국제 기준을 마련하려고 논의 중이다. 하지만 그 방식에서 각국 노사정 대표들의 이견이 커 합의점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특히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제3의 영역을 만드는 것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ILO에서 이뤄지는 플랫폼노동 전문가 회의에 노동자 측으로 참여한 윤애림 박사에 따르면, 사용자 그룹에서 제3의 영역을 만드는 방식을 해결책으로 제시했고 노동자 그룹이나 정부 그룹은 이에대해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하는 사람과 같은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중간 영역을 만들어 보호하는 방식에 대해서 오히려 기업 측이 대안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현대화)해 플랫폼노동자를 근로자로 넣으면 노무 비용과 부담이 크게 증가하므로 기업이 이를 우회하고 회피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중간 카테고리의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EU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EU는 플랫폼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2024년 말 'EU 플랫폼 노동 지침(Platform Work Directive)'을 통과시켰다. 여기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건 플랫폼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받도록 하는 점이다. 이 지침 초안에서는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5개(작업 지시, 보수 결정 등)를 제시하면서 이 중 2개를 충족할 경우 고용관계를 추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프랑스 등 회원국의 반대로 최종 지침에는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 기준은 회원국에 맡기도록 하고 근로자 추정제도만 도입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EU의 플랫폼 노동 지침은 플랫폼노동자를 노동법적 보호를 받는 근로자 안으로 포섭하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EU 지침에는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중간 영역을 만들어서 더 낮지만 넓은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지 않았다.
중간 영역을 도입하려던 미국의 시도도 있다. 2015년 미국 민주당 성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독립노동자(independent worker)'라는 중간 영역을 도입해 차별 금지나 단결권을 부여하되,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할증임금 등은 제외하자는 제안을 했다.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민주당 오바마 정부에서 노동 영역에 핵심 역할을 한 앨런 크루거와 세스 해리스가 이 제안을 했지만, 미국에서도 AFL-CIO 같은 대표적인 노조가 반대하면서 도입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방식이 EU와 ILO에서도 비슷하게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처럼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계 각국의 노조나 노동법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듯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우려할 만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대 등의 영향으로 짧게는 5년째, 길게는 20년째 권리 밖 노동자를 위한 보호 도입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근로자 개념을 확장해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를 모두 포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근로기준법이 해고 제한과 주52시간 규제 등 상당한 수준의 보호와 규제를 담고 있는 이상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함되기는 쉽지 않다. 민주노총은 수년간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 870만 명의 플랫폼노동자나 프리랜서 중 사용종속관계에 관해 뚜렷한 지표를 가진 일부는 오분류되지 않고 근로자로 인정받아야겠지만, 그 외의 많은 이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여전히 법의 보호 밖에 방치될 것이다.
근로자성 확대냐 제3영역이냐를 두고 수년간 교착상태로 노동자들이 방치된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일하는 사람과 같은 중간 영역의 도입을 인정하되 핵심적인 노동법적 보호의 영역 중 일부를 가져와야 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일하는 사람에게 최저임금과 유사한 최저보수제를 도입하고, 연장·야간·휴일 근무에 대한 할증임금을 적용하는 방식이 있다. 근로자의 경우 주52시간의 최대 근로시간 규제, 해고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법적으로 보장되는데, 플랫폼노동자에게 최대 근로시간 규제나 해고 제한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실제 노동과 산업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수입은 최저임금 이하라는 최저임금위원회 연구용역도 나오는 등 플랫폼노동의 가장 1차적인 문제는 저임금에 있다.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임금 부분에 대한 보호가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 뉴욕시와 시애틀시의 사례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플랫폼노동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정면돌파를 시도했는데, 뉴욕시와 시애틀시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캘리포니아주는 플랫폼노동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는 방식을 도입했지만, 주민발의안 22호에 의해 정작 우버 같은 차량공유플랫폼의 운전기사는 제외된 바 있다. 반면 뉴욕과 시애틀은 배달라이더나 차량 공유 서비스 기사를 근로자로 포함시키지는 않되 이들에 대한 최저보수제를 도입했다. 뉴욕시의 음식 플랫폼 배달라이더는 지난해 시간당 21.44달러 이상의 최저보수를 받는데, 이는 뉴욕시 근로자 최저임금인 16.5달러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플랫폼노동자의 경우 근로자와 달리 스스로 일하기 위한 장비를 사고 휘발유를 넣고 사회보험에도 가입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더 높은 최저보수를 책정한 것이다. 이처럼 국내에도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을 위한 입법이 된다면 최저보수제가 포함되어야 실효적인 보호가 될 수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그런 세상을 가져오진 못했듯, '모두가 근로자가 되는 세상'은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요원해 보인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어 노동법의 보호 패키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이상적이지만 이루어지기 힘들다. 수년 넘게 권리 밖에 방치된 870만 일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보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최선의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참고
전형우, 미국의 플랫폼종사자 보호와 노동법의 역할,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4.
전형우, 미국의 플랫폼종사자 보호와 규제방식, 노동법연구 57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