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또 트럼프했습니다. 두 나라 정부가 오랜 시간 협의해 이른 합의를 SNS를 통해 일방적으로 뒤집을 듯 발표했습니다. 한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동차와 의약품 등의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트럼프 입장에선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국회가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이하 대미투자 특별법)' 비준을 미루는 이른바 '침대 입법'을 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보입니다.
오전 7시 조금 넘어서 전해진 트럼프 X(옛 트위터) 속보에 오늘 한국 주식시장이 몸살을 앓겠다는 걱정을 했는데, 정작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5천 포인트를 넘었습니다(5,084.85p). 주식 전문가가 아니라서 단정적 표현에는 조심스럽지만, 우리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트럼프의 협박을 "결국 타코(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언제나 꽁무니를 뺀다)쇼로 끝날 압박용·협상용"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브닝브리핑에서는 트럼프의 판 흔들기 이유와 노림수, 우리 정부의 대응 움직임, 또 무엇보다 우리가 약속을 어기거나 '침대 입법'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 등에 대해 고민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지지율 최저치...성과 필요한 트럼프요즘 미국이 어수선하죠. 사실 어수선하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할 정돕니다. 백주 대낮에 미국 시민권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 속에서 이민 단속 요원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와 미국 정부는 숨진 시민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오늘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국정운영 지지도는 38%입니다. 지난해 11월 집권 2기 최저치와 같은 수치입니다. 특히 이민 정책 지지율은 39%에 그쳤는데, 지난 1월 초에 41%에서 또 떨어졌습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 지나쳤다는 응답이 58%, 충분하지 않다 12%, 적당하다 26%였습니다.
트럼프가 압박감을 느낄 또 하나의 변수는 상호관세 정책의 적법성에 대한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지난 20일 최종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판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관세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수입업체들이 낸 소송으로 1,2심에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부과는 대통령 권한 밖이라고 판단한 상탭니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계속 늦어지는 건 보수 성향 대법관들조차(미국 연방 대법원은 현재 6:3으로 보수 우위) 트럼프 관세정책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아서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그린란드 문제, 유럽과 캐나다의 반발 등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악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연초 베네수엘라 마두로를 잡아와 의기양양한 기자회견을 했을 때를 정점으로 이후 트럼프 '기세'는 내리막입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구체적인 성과'가 트럼프에겐 절실한 상황입니다.
"압박용 협상 메시지"...산업장관 미국으로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오늘 트럼프의 발표를 이구동성으로 '압박용 협상 메시지'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미투자 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침대 입법'하지 말고 '구체적인 입법 스케줄'을 제시하라는 압박으로 봅니다. 관세를 다시 25%로 환원하겠다면서 정작 구체적인 일정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 결국 이후 협상을 위해 일단 판을 크게 흔드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압박 공식이란 설명입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관세 인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국회 법안 비준을 확실히 하려는 목적"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대미투자 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 메시지"
아무리 얄미워도 국제사회는 냉정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이고, 미국과 트럼프가 막강한 힘을 가진 '슈퍼 갑'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죠. 이럴 때 우리 정부는 일단 맞춰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으로, 미국으로" 급히 대표단을 보내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가 있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곧 미국으로 넘어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조만간 미국을 찾아 제이미슨 그리어 미 통상대표부 대표와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는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대책회의도 열렸습니다.
트럼프 귀에 "한국을 압박하라"라고 입력한 사람은 아마도 러트닉 상무장관일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의 진의를 파악하고 오해를 해소하려면, 결국 러트닉을 설득해야 할 겁니다. 앞서 관세협상 때도 러트닉이 트럼프로 가는 최종 관문이었습니다. 특별법 처리의 '구체적인 시간표'에 관해 실무협의가 진행될 걸로 보입니다.
약속 불이행? NO,,,침대 입법? 글쎄요그렇다면 여기에서 본질적인 질문 한 가지. 우리 정부가 진짜 미국과의 약속을 어긴 걸까요?
먼저 지난해 11월 26일 대미투자 특별법 발의 상황을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11월 13일 이른바 '조인트 팩트시트'가 발표됐습니다.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는데, 미국은 특별법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면 그달 1일자로 소급해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습니다.
한미 합의(MOU)를 비준할 것인지, 별도 특별법으로 처리할 것인지 논란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대미투자 특별법이 11월 26일 발의됐고, 미국도 12월 4일 관보 게재와 함께 자동차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했습니다. 11월 26일 대미투자 특별법 발의를 '법안 제출'로 즉 합의 이행으로 상호 인정한 것입니다.
대미투자 특별법 처리 시한에 대해서 한미가 합의한 바는 없습니다. 발의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최종 통과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약속 불이행'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약속 불이행은 아니지만 '침대 입법'이라고 할 순 있을까요?
대미투자 특별법은 현재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22대 국회의 일처리 속도, 특히 재경위 처리 속도를 감안하면 '침대 축구'? 아리송합니다. 22대 국회 법안처리율이 전체 20.24%(15,910건 발의 3,220건 처리)인데 재경위는 단 0.29%입니다. 1,024건이 발의됐는데 지금까지 단 3건만 처리됐습니다. 대표적으로 느린 상임위입니다. 정부 여당이 이른바 개혁입법 밀어붙이듯이 속도전에 나서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500조 원이 넘는 돈을 미국에 투자하는 법안이고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도 지켜봐야 하는데 과연 속도전에 나설 일인지 근본적으로 의문입니다.
미국, 2주 전 사전 경고?...협상은 이제부터물론 미국은 불만을 가질 순 있습니다. 제임스 헬러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2주 전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사대리 취임 직후 일상적인 현안 챙기기 차원이었는지, 미국이 사전에 경고 신호를 보낸 건지는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SBS 8뉴스를 비롯해 후속 보도를 확인해보시죠.
아울러 미국의 불만이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 가능성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온라인플랫폼 규제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해선 안 된다는 내용은 실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들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건을 외교 통상 이슈로 끌고가기 위해 미국 정부에 적극적인 로비를 하고 있는 상황과 연결해 빅테크 규제 문제에 무게를 싣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역시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트럼프가 원하는 '구체적인 성과'는 앞으로 진행될 한미 실무협의를 통해서 드러나겠지요. 그게 대미투자 특별법의 처리 시간표일지, 추가적인 투자나 국방비 관련 돈 문제인지, 온라인플랫폼 규제와 관련한 불만과 우려를 해소하라는 것인지 현재로선 추측의 영역입니다. 다만 우리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교 안보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는 소통과 협력의 자세가 중요할 텐데, 현재 정치권이 소통과 협치 쪽으로는 워낙 거리가 먼 상황이라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