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이 연말부터 '처 승격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관할의 방사청을 총리실 소속의 국가방위자원산업처로 전환시켜 변화하는 안보·방산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방산 수출만 따로 떼서 생각해보면 방산 관리 기관이 총리실 그늘 아래에서 수출금융, 절충교역 등 타 부처와 연관된 난제들을 푸는 편이 용이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방사청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면 방사청의 처 승격론은 다소 성급해 보입니다.
방사청의 기본은 누가 뭐라 해도 획득입니다. 국내외 구매 또는 독자개발의 방법으로 무기를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방사청의 절대 임무입니다. 이로써 우리 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독자개발해 전력화한 무기의 경우 수출의 길이 열립니다. 방사청은 이때 나서서 수출을 도우면 됩니다. 즉, 획득을 해야만 수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획득이 최우선입니다.
방사청이 처로 승격되는 제2의 개청을 주장하기에 앞서 방사청의 기본기인 획득은 안녕한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방산을 관찰하는 많은 사람들이 획득의 부조리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획득 절차만 깔끔해도 국산 무기의 수출 경쟁력은 배가될 것이라는 지적이 자자합니다.
세월 낚는 복잡다단한 획득 절차무기 획득의 절차는 육해공군, 해병대의 소요 제기에서 시작됩니다. 군에서 어떤 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소요를 제기합니다. 합참에서 이를 받아 도입에 알맞은 무기인지 아닌지 살펴 소요를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국방부가 소요 검증이라는 더블 체크를 해야 1차적인 소요 단계가 마무리됩니다. 무기의 소요를 살피는 데만 1~2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다음은 선행연구, 사업추진기본전략과 국방중기계획 수립, 사업타당성조사입니다. 선행연구는 획득의 방법론을 검토하는 단계로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등 전문기관이 맡습니다. 선행연구에 들어갈 시점이 되면 어지간한 사람은 선행연구의 정답을 압니다. A 방산업체의 임원은 "독자개발과 국내 구매, 국외 구매 중 어떤 방법으로 새로운 무기를 획득해야 할지는 무기 시장 동향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선행연구에 굳이 몇 억 원의 돈과 수개월의 시간이 투입된다"고 꼬집었습니다.
독자개발, 국내 구매, 국외 구매 중 획득의 방법이 정해지면 방사청은 소요 무기의 물량과 획득 기간을 추려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작성합니다. 이어 국방부와 방사청은 사업추진기본전략을 국방중기계획에 반영해 소요 무기의 획득 계획을 공식화합니다. 사업추진기본전략과 중기계획 수립은 국방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의결을 거칩니다. 까다롭지 않아 보여도 1, 2년은 족히 걸립니다.
사업타당성조사는 한국국방연구원 KIDA 등이 수행합니다. 사업비의 적정성, 소요 무기의 필요성 등을 따지는 절차입니다. 종종 사업타당성조사가 파문을 일으킵니다.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초도 물량을 40대에서 20대로 줄인 결정, KF-21 공대함 유도탄 독자개발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 등이 최근 사업타당성조사에서 나온 논란입니다. 방사청의 한 고참 공무원은 "사업타당성조사를 수행하는 단 몇 명의 인원이 몇 년 동안 숙의됐던 소요 무기 획득 과정에 찬물을 끼얹곤 한다", "다수의 치열한 논의의 결과라기보다는 소수의 아집으로 배가 산으로 갈 때가 비일비재하다"고 개탄했습니다.
무기 획득 전문가는 무려 7,000명인데…무기를 사든가 개발하는 본격적인 사업은 소요 제기부터 사업타당성조사까지 끝내고 재정경제부에 사정사정해서 예산 받아야 시작됩니다. 사업 공고 내고 몇 차례 입찰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1~2년은 금방 잡아먹습니다.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KDDX의 경우 독자개발을 결정한 뒤 사업 공고 내는 데만 2~3년 허송세월했습니다. 해군의 한 예비역 제독은 "그러는 동안 세계의 조함 기술은 저만치 달아났다"며 혀를 찼습니다.
왜 이렇게 무기 획득에 시간이 걸릴까요? 일손이 모자라서?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방사청 1천600명, 국방기술품질원 800명, 국방기술진흥연구소 400명, KIDA 500명, 국방과학연구소 3천800명 등입니다. 7천 명 넘는 방위사업 전문가들이 무기 획득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무기 획득을 맡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무기 획득 절차가 복잡다단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관가의 상식에 따르면 권력이 있는데 직원이 많으면 기관은 이런저런 절차를 만들어냅니다. 무기 획득 과정에 7천 명 넘는 공무원들이 포진한 가운데 없어도 되는 절차, 중복되는 절차, 기간을 과도하게 차지하는 절차들이 창조됐다는 쓴소리가 학계에서도 나옵니다.
B 방산업체의 임원은 "무기 획득 관료들 인건비로 병사 30만~40만 명을 운영할 수 있다", "무기 획득 기관들이 지금 할 일은 '다운사이징'"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전 방사청 고위직은 "획득 기관들 스스로 만들어낸 많고 복잡한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나중에 감사원의 철퇴를 맞는다"며 현행 획득 제도를 '자업자득의 덫'이라고 촌평했습니다. 획득 절차의 간소화, 합리화가 절실하다는 것은 방사청 당국자들도 두루 인식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입찰 중에 생긴 일입니다. 방사청이 미국의 보잉과 L3해리스, 스웨덴의 사브가 제출한 사업 제안서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남 부끄러운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보잉 측의 제안서가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쓰였다는 이유로 방사청이 결격 처리한 것입니다. 사우디, 인니, 이집트, 태국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무기 도입할 때 영어 제안서를 받는데 대한민국의 방사청은 한글만 고집하는 진풍경에 외국 유력 방산업체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방산 수출 빅4를 노린다면 획득 담당자들 영어 실력부터 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어 독해 능력만 향상돼도 획득 절차는 상당폭 매끄러워질 것입니다. 아울러 앞서 제기했던 소요 제기부터 입찰, 협상까지 모든 획득 절차에서 중복, 지연, 경직, 무용 등 부조리한 요소들을 덜어내서 절차 간소화를 꼭 추구해야 합니다. 획득 절차 간소화를 통한 획득 신속화만 성취해도 방사청은 큰 개혁 해냈다고 안팎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방산 수출도 획득에서 시작합니다. 업체가 아무리 좋은 무기 개발해도 우리 군이 획득, 즉 도입하지 않으면 수출할 수 없습니다. 수출하려면 먼저 먼저 자국에서 운용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획득만 합리적으로 잘 해도 방산 수출에 큰 도움 됩니다. 획득 절차 간소화, 획득 인력의 경쟁력 제고 등 획득의 정상화와 신속화가 이뤄지면 국산 무기는 번듯한 실적, 두둑한 밑천, 넉넉한 시간 등이 생겨 수출에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 정부의 직접 지원을 꺼리는 국제 방산 무역 질서에도 부합합니다. 방사청을 국가방위자원산업처로 확대하는 것은 획득 정상화 다음에 차분하게 생각해볼 만한 미래 과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