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곰 사육 '종식' 선언…정작 끝난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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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의 한 농가.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철창 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 폭 2미터, 길이 8미터 남짓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곰들이 어슬렁거린다. 동면에 든 곰을 포함해 19마리. 박상희 씨가 36년째 키워온 곰들이다. 그나마 이 농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다른 곳에 비해 곰들의 상태가 양호하고, 대부분 잘 먹어서 겨울잠에 들어갔다.

올해부터 이 곰들을 기르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됐다.

2026년 1월 1일. 지난 1일부터 대한민국에서 '웅담 채취용' 곰 사육과 소유가 법으로 전면 금지됐다. 1981년 정부가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 수입을 장려한 지 45년 만이다.

아파트 한 채 값이던 '효자 곰'

1980년대 중반, 대한뉴스는 곰을 이렇게 소개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는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입니다."

정부에게 곰은 '효자 산업'이었다. 박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곰값도 비쌌어요. 새끼 곰이 천만 원, 어미 곰은 1억 2천에서 1억 8천까지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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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는 금액이다. 그는 수컷 한 마리, 암컷 세 마리로 시작해 한때 37마리까지 키웠다.

하지만 1993년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CITES) 가입으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산업은 급속히 침체됐다. 판로가 사라진 곰들은 농가에 방치됐다. 일부 농가에서는 좁은 철창에서 마취도 없이 금속관으로 담즙을 채취했다는 동물 단체 보고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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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원 vs 4,000만 원

정부는 '곰 사육 종식'을 선언했지만, 정작 곰을 사들이는 비용에는 선을 그었다. 곰은 '사유 재산'이기에 국민 세금으로 매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매입의 짐은 시민단체가 짊어졌다. 단체들은 기부금을 모아 마리당 500만 원에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농가의 셈법은 다르다. 박 씨는 고개를 저었다.

"웅담이 100CC에서 180CC까지 나와요. CC당 30만 원이면 3천만 원, 큰 놈은 4천500만 원이에요. 근데 그걸 500만 원에 달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대표는 난감한 처지를 털어놨다.

"저희는 사겠다고 해봐야 돈이 없습니다. 합법이었던 산업을 불법으로 만드는 건데, 정부가 보상하는 게 합리적이잖아요."

농가도, 시민단체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만 빠져 있다.

6개월 유예, 그 후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정부는 '6개월 계도 기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올해 6월까지는 곰을 소유·사육해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웅담 채취가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채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브리핑에서 "매입 단가를 두고 동물보호단체와 농가 간 견해 차가 커서 매입이 지연되고 있다"며 "마리 당 월 10~15만 원 정도 관리비를 보전해 견해 차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가가 원하는 건 '사료비 지원'이 아니다. 박 씨는 "정부에서 장려하고 추천했던 사업을 강제로 폐업하는 건데, 폐업 보상을 하든가 시설 보상을 한다든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정부는 곰을 '국가 관리 대상'으로 넘기면서 사료비 명목으로 최소한의 비용만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농가는 45년간 합법적으로 운영해온 사업에 대한 '진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에 대화의 출발점이 다른 셈이다.

최태규 대표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죽이지 않겠다는 계획도 사실 12월 들어서야 나왔어요. 6개월 동안 어떻게든 해보겠다 정도인데, 잘 안 됐을 때 어떻게 할 건지는 답이 없어요. 그때는 도살도 안 되니까 결국 농가에 곰이 그대로 남는 거예요. 사육곰 산업이 사실상 지속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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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은 국장은 "2~3개 농가를 제외하고는 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하지만 6개월 안에 199마리 전부가 매입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장 갈 곳 있는 건 30마리

설령 매입이 된다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기후부에 따르면 즉시 입소 가능한 곰은 구례 보호시설 20마리, 공영·민영 동물원 12~14마리 등 약 30마리에 불과하다.

구례 시설은 49마리 규모지만 이미 21마리가 입소해 있다. 산술적으로는 28마리가 더 들어갈 수 있지만, 실제로는 20마리가 목표다. 곰은 원래 단독 생활을 하는 동물이라 합사하려면 별도의 훈련이 필요한데, 이를 고려하면 '2마리 1실' 기준의 정부 계산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태규 대표는 "정부가 발표한 수용 규모는 합사 가능 여부 등 개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라며 "실제로 보호시설에서 관리할 수 있는 규모는 훨씬 더 적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민간시설 50마리, 2027년 서천 시설 70마리를 추가 확보하고, 해외 이송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있는 건 30마리뿐. 나머지 170마리는 언제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14억으로 50마리?

정부가 2026년 민간 보호시설 지원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14억 원이다. 시민단체들이 국회를 쫓아다니며 겨우 확보한 돈이다.

최태규 대표는 이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구례 보호시설이 50마리 규모인데 100억이 들었어요. 서천은 70마리에 260억이고요. 그런데 14억으로 50마리를 넣겠다고요. 산술적으로 보면 철창 만들어서 하나씩 집어넣겠다는 거밖에 안 돼요."

그는 졸속 추진이 결국 곰에게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급하게 가면 손해 보는 건 곰들이에요.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육곰 농장처럼 만들어서 집단 수용하겠다는 거잖아요."

최 대표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예산을 증액해서 저희 같은 민간 단체에 맡기든지, 아니면 무리하게 속도 내지 말고 2027년까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서 제대로 된 시설과 운영 주체를 정해야 합니다."

어제부터 곰 사육은 불법이 됐다. 하지만 199마리의 곰은 여전히 농가에 있다. 정부는 6개월을 벌었지만, 그 6개월 뒤에도 이 곰들이 농가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가 장려해 시작된 산업이다. 45년 만에 끝을 선언했지만, 그 마무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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