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간 지난 26일 금요일 한 줄의 기사가 전해지면서 전 세계 외교가가 들끓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프리카 소말릴란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가로 승인했다'는 내용의 기사로,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양국 간 대사 임명과 대사관 개설 등을 담은 완전한 외교 관계 수립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양국은 1년간 광범위한 대화를 거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압둘라히 소말릴란드 대통령의 결정으로 이번 협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양국의 외교 관계 수립을 '획기적이고 역사적'이라고 크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인구 500만 명의 소말릴란드는 아프리카 동쪽에 위치한 소말리아의 북서부 해안지역에 자리한 지역입니다. 에티오피아와 접해 있고, 우리에게 아데만 여명 작전으로 잘 알려진 홍해 끝 아데만과 맞닿아 있는 지역입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레 전 소말리아 대통령이 1991년 축출되자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소말리아에서 분리, 독립했습니다. 소말리아는 지금까지 30여 년간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말리아 내전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 틈을 타 소말릴란드는 자체 군대와 화폐를 보유하고 대선을 비롯해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며 독립 정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계속되는 내전으로 불안정한 소말리아 본토보다 소말릴란드 지역 치안 상황이 더 낫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도 소말릴란드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소말릴란드는 수년간 미국 정치권과 관계를 쌓아오며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말릴란드에 대해 이스라엘이 갑자기 국가로 승인하고 대사관을 개설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한 겁니다. 당장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이스라엘 조치는 불법적인 행위며 강력히 거부한다'고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수프 아프리카연합 의장은 '소말리아 주권을 침해하는 어떤 시도도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집트와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프리카-중동 지역 20여 개국과 이슬람 협력기구도 이스라엘 발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심각한 파급효과가 있을 수 있고 전체적인 국제 평화와 안보에도 큰 영향을 준다'며 '소말리란드 승인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럽연합도 '유엔 헌장과 아프리카연합 헌장, 소말리아 헌법에 따른 소말리아의 주권과 영토적 완전성, 통합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며 승인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29일 긴급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소말릴란드 영토를 포함한 소말리아의 영토 보전을 계속 인정한다"는 성명을 내놨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재밌는 반응을 내놨는데요 뉴욕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인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소말릴란드가 뭔지 아는 사람이 있나?"며 되묻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세계 주요 언론들도 비중있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룻밤 새 아프리카의 조그맣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던 지역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 겁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서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인정할 경우 자칫 자국에 불똥이 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종족 간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소말릴란드를 인정할 경우 자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당장 발등의 불이 될 수 있습니다. 반발하고 나서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의 비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왜 소말릴란드 국가 승인을 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승인 이유를 현재까지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다만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몰아내려는 계획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AP통신은 올해 초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주민 재정착 계획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소말릴란드를 비롯해 여러 국가와 접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소말릴란드와 이스라엘은 그런 논의는 없었다고 부인했습니다. 미국은 보도 이후 해당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보도가 나온 지 1년도 못 돼 이스라엘이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승인하는 깜짝 발표가 나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계획이 물밑에서 계속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행위를 전쟁범죄, 나아가 인류 최악의 범죄인 집단학살, 제노사이드로 보고 반대가 심한 상황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측의 묘한 움직임은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지 2026년이면 햇수로 3년이 됩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장기 분쟁입니다. 지난 10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다단계 평화 구상의 1단계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휴전 이후 가자지구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난 23일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가자지구 북부에 과거 철수한 정착촌을 대체할 전초기지를 세울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2005년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모든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한 바 있습니다. 이 발언 이후 미국의 강한 반발이 나오자 이스라엘 국방부 측은 "가자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할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발언에 불과 며칠 앞선 12월 21일에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19개에 이르는 대규모 신규 정착촌 건설을 승인했습니다. 가자지구는 반대가 심해 한발 물러났지만 서안지구는 야금야금 이스라엘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걸로 분석됩니다.
불과 일주일 사이 나온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계획과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대체지로 뽑히는 소말릴란드에 대한 국가 승인, 우연의 일치일까요? 치밀한 계획일까요?